슈퍼히어로의 오래된 상징이자 아이콘은 당연히 슈퍼맨이지만 21세기에 가장 인기 있는 히어로는 아마도 스파이더맨이 세 손가락안에 꼽힐 것이다. 만화를 많이 보는 연령대가 감정이입하기 좋은 청소년의 외견,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하이틴 스토리, 메리 제인이나 그웬 스테이시와의 풋풋한 러브라인, 게다가 그린 고블린이나 닥터 옥토퍼스같이 매력적인 빌런까지 만화 주인공으로 맛있는 재료는 다 들어갔는데 인기 없는 요리가 나올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초 인기 히어로 스파이더맨을, 권혁웅 시인은 이전에 슈퍼맨이나 마징가를 비틀었듯이 능숙하게 이미지를 비틀어버린다. 시인은 골목길의 리어카에서 스파이더맨을 본다.
애마 리어카를 끌며 거리의 잡스런 물건들을 손만 뻗으면 휙휙 손쉽게 주워 담는 스파이더맨. 보문사와 낙산을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리어카를 보며 소년이었던 시인은 자기도 히어로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을까 아니면 다른 것에 눈길이 갔을까 3연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 쪽인듯하다
성신여중 학생을 실루엣을 따라가서 거미인간이 되어 다족류의 발 하나를 걸쳐두고 싶었다는 소년. 건축학개론 영화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면, 그 첫사랑의 손 한 번을 잡아보기 위해 소년은 영웅이 아니라 신화라도 되리라고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피터 파커처럼 겉으로 어벙한 범생이같은 얼굴이라도 가면 하나 쓰면 용맹한 히어로로 뉴욕 빌딩숲을 날아다니듯 소년도 모자라도 푹 깊이 눌러쓰고 서울 골목길을 모조리 날아다닐 각오로 다리가 떨어져 나가도록 리어카를 추격하지 않았을까.
허나 거미인간은 소년만큼 성신여중 소녀를 소중히 생각하진 않았던 걸까 종이더미와 고철더미와 같이 소녀는 구석에 놓여질 뿐이다. 무려 이십 년 동안. 소녀도 나와 같이 폐지를 학교에 내고 콜라를 마시며 늙어갔을까 나의 첫사랑 초등학교 옆자리 그녀도 나처럼 시인처럼 나이를 먹었을까
소년과 소녀는 골목에서 태어나 넓은 마당으로 가려다 뭔가에 걸렸지만
리어카의 거미인간은 동서남북 서울 어디든 맘대로 넘나들었다
토니가 준 슈트 없이도 사실 그는 자유로웠다
그는 자유인이자 독재자였다많은 히어로들이 그렇듯 자유롭지만 범법자 또는 법의 창조자
그의 많은 재산을 대출받아서 시인은 시를 쓴다고 한다 그러면 그 대출금의 대출을 나도 받아볼 수 있을까...
시인의 대출금에서 시를 대출받아서 내 어릴 적 첫사랑 그녀를 찾는 탐정이라도 알아볼까
아닌가 추억 속의 그녀를 추억으로 남겨놓는 게 내 어릴 적 첫사랑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