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이 홀로 악기를 두드리며 새로운 곡을 상상하는 과정이든 사진사가 적절한 포커싱을 위해 몇 날 며칠이든 한 자리에서 대기하는 긴장의 순간이든, 작가가 마감 당일까지 글이 나오지 않아서 전날 밤을 새우고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앉아있는 시간이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건 영 쉽지가 않다. 하지만 이런 힘든 시간에 비하면 놀랍도록 창작의 열정이 샘솟는 시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형도의 시에 나오듯 사랑을 잃고 헤매며 쓰는 실연의 시기가 아닐까.
사랑을 하고 연애를 시작하면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인다는 말처럼, 사랑을 잃고 연애가 끝나면 반대로 세상은 빛을 잃고 무채색으로 변해버린다. 그런데 무채색이 바로 연필이나 볼펜의 색깔이라 그런 걸까 그 상실의 슬픔 애도하는 마음은 자기를 자꾸 입 속에 갇혀 있는 걸 거부하는 듯하다. 특히나 실연 후에 홀로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올 때, 기형도 시집 제목처럼 입 속의 검은 잎은 튀어나오려고,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지만 펜을 들면 어떻게든 나오려고 몸부림치며 애쓰는 듯하다.
네이버 웹툰 은주의 방에 나오는 은주도 회사를 그만두고 9달째 백수 상태로 홀로 있는 집에 돌아오니 방이 어질러져 있어도 치울 의욕이 그다지 나질 않는다.그렇지만 우연히 셀프 인테리어에 대해 알게 된 이후 그녀는 페인트질부터 하나씩 배우며 자기 블로그에 인테리어로 예뻐지는 자기 방을 하나씩 차곡히 업데이트하니, 또 다른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구하며 연락이 온다. 예뻐진 방도 그렇지만 변화를 즐기는 은주 자체의 모습이 아름답기에.
물론 은주는 프로도 아니고 여자 혼자 몸으로 남자 방에 인테리어 해주러 들어간다는 게 부담스럽다. 이를 눈치챈 소꿉친구 민석이는 자기가 함께 가겠다고 하고 심지어 민석이는 직업부터 인테리어 전문가다.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심각한 의뢰인의 방에 가서 은주와 민석이는 열심히 방을 치우고 페인트질을 하고 새롭게 가구를 배치하자 방이 환해지고 사람의 표정도 환해진다.
사실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다. 방의 쓰레기를 치우고 새로 색칠하고 배치를 바꿔보는 것.그렇지만 사소한 변화로 사람을 기쁘게 한다면 그게 바로 하나의 예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