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생들이 만났다가 순식간에 헤어지는 장소 그런 곳을 기형도는 그리고 우리는 정거장이라 부른다. 그곳은 꼭 버스 같은 대중교통 정거장만은 아닐 것이다 책이나 영화같은 텍스트 또한 그러한 장소이며 유튜브나 지금 이 브런치같은 플랫폼 또한 하나의 정거장.
비가 오는 중에 정거장에서 노트를 덮고 추억들을 회상하던 시인은 망각을 본다. 어쩌다가 자신이 집을 떠났는지 얼마나 사람들이 느리게 죽었는지 내 낡은 노트는 알지 못한다. 의심 많은 길들은 갈라지고 흉기처럼 단단한 온갖 혀가 찔러대지만 그저 시인은 노트라는 하나의 정거장에 희망의 조각들을 옮겨 쓸 뿐이다. 이미 늙어있음에도.
이 시는 마무리 문장으로 인해 젊은 날들이 다 지나가고 벌써 노회해버린 자신에 대한 한탄과 후회로 읽힐 수 있다 그 또한 일리있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황혼무렵 시 한잔 시리즈 내내 강조하듯 작가가 곧 진리이던 시대는 이미 끝났고 우리는 수능 문학지문처럼 화자의 의도가 무언지 단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할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기형도의 시에서 이미 늙어있음이 아니라 시 내내 희미하게 강조되는 희망의 작은 문, 미안하지만 이제 희망을 노래하고 싶은 기형도의 끈질긴 마음을 본다. 한국 역대 최고의 웹툰이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10년간의 복선 회수 없이 엉망진창인 스토리로 대충 마무리해 버린, 양영순의 덴마를 백작가의 덴큐가 재해석하고 리메이크하여 오늘 드디어 100화에 걸쳐 아름답게 마무리하듯이.
이미 양영순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하다가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라는 그리스신화의 영웅 둘이 대결하는 클라이맥스 직전에, 갑자기 연재 중단을 해버린 플루타크 영웅전이라는 매우 나쁜 문제작의 사례가 있다. 그렇기에 설마하니 그 다음 10년간의 연재를 또 마무리를 안 하고 연재중단을 하겠냐는 독자들의 믿음이 있었건만 양작가는 프로 작가로서의 최소한의 책임도 없이 그동안의 스토리에 대한 수습은 없고 연중만도 못한 어정쩡한 스토리로 덴마 완결을 내버린다.
수십만의 독자가 이를 아쉬워하고 댓글란에서 성토했으나 양작가가 아니라 양가놈이라 불리게 된 양영순은 재연재나 수정 따위는 없었다. 대다수 독자들이 허탈해하며 이제 다시는 양영순 만화따위 안 볼 것이며 다른 만화를 연재해도 불매운동할 거라 선언한 후, 놀랍게도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덴큐라는 덴마 팬픽을 연재하던 백작가가 양작가의 허락 하에 정식연재가 결정되었다. 심지어 그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라는 양영순의 전작 연중을 연상시킬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백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새로운 끝이자 시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그리고 오늘 끝난 그의 덴큐 여정을 또 독자들마저 찬양하며 오마쥬 하고 패러디한다 물론 나 역시...
땅 끝은 바다의 시작이듯이
한 이야기의 끝은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이야기는 이제 막 완결난 덴큐와 덴마를 정주행하려는 독자를 위해 줄여두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