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른 시인들처럼 백석과 오스칼도 한동안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이 시는 1948년 백석이 이제 서른을 넘고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경험한 후에 쓰여졌다 그래서일까 한없이 낭만적이고도 근대적이던 이전에 다룬 시들과는 다른 씁쓸한 정서가 엿보인다.
아내도 없어지고 집도 없어지고 부모 동생과도 떨어져서 바람불고 추운 방에 몸을 뉘인 백석. 마치 21세기의 히키코모리 방구석 폐인처럼 방에서 뒹굴며 뜻 없이 글자를 쓰고 가슴이 꽉 메이고 자신의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우울증 환자처럼 망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뒤에 다시 고개를 들어 창문과 높은 천장을 보며 내 의지가 아니라 무언가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굴려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한가운데에서 시위 진압을 명령받았지만 무언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말려들어 오히려 시민군에 합류한 오스칼과 그의 부하들처럼...
귀족의 호칭과 영토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하게 시민군에 합세한 오스칼은 마치 백년전쟁에 신의 부름으로 검을 들었다며 혜성처럼 등장한 시골소녀 잔 다르크처럼 파죽지세의 공세로 시민군을 지휘한다. 시민군에 합류한 총사령관 라파예트 후작과 함께 연전연승하던 오스칼은 수많은 억울한 정치범들이 갇혀 있고 프랑스 파리의 무기고로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의 선두에 선다...
하지만 대귀족 출신인 오스칼도 그저 피와 살을 가진 연약한 인간. 선두에 서서 열정적으로 군을 지휘하다가 바스티유 수비군의 총을 맞고 오스칼은 쓰러진다. 쓰러진 오스칼은 하늘에서 사랑하는 앙드레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환상을 본다...
다행히 소리도 잘 들린다고 말하며 바로 절명한 것은 아닌 오스칼이지만, 이제 자신의 한계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절감하며 너무 지쳤으니 5분만 조용히 쉬고 싶다고 청한다...
하지만 이렇게 이제 그만 쉬고 싶어하는 와중에도, 귀가 또렷이 들리는 오스칼은 왜 아군의 대포 소리가 멈췄느냐며 공격을 계속해서 목표인 바스티유를 함락하라고 명령한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용맹하고 모범적인 장군 그 자체였던 오스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