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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상대적이다.

커서도 가난한 것은 본인의 탓이다.

by 연금술사

저는 어릴 때 집이 정말 많이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어려운 학생에게 준다는

장학금이나, 쌀 같은 것을 받아온 기억도 있군요.


그러다보니, 어릴 때는 가난이 정말 싫었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커서는,

남들이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를 할 때,

'뭘 그정도 가지고..' 하면서 코웃음 친적도 있었어요.


네, 솔직히 말하면,

소위 말하는 가난코스프레를 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가 잘 안되면,

어릴 때의 가난 탓을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나중에 중등 임용고사에 붙기 전,

시골에서 잠깐 근무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교생이 25명 정도 되는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에서 고1 담임을 맡았는데,

당시 저희반 학생이 8명이었어요.


몇명의 일화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A학생 : 어느날 저에게 오더니, 맞은 자국을 보여주며, 부모님이 자길 버리고가서, 삼촌 집에서 사는데, 어제 삼촌이 자기를 이렇게 때렸다고하더군요..

네..아동학대맞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렇게 맞고 산다고하더군요. 자신의 팔근육을 보여주며 이게 다 맞아서 생긴 근육이라고하는데..


할말을 잃었습니다. 신고를 해야했는데, 당시 그러질 못했네요. 제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물어보니 그 아이는 절대 신고하면 안되다고..자기는 갈 곳이 없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자기가 잘못해서 맞았다고 했었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떻게 지낼지 궁금하네요.


B학생 : 어제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없길래, 먹고 남은 참치캔 국물을 먹었다고하더군요..

농담인줄 알았는데, 진짜였습니다. 산속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사는데 눈이라도 오면 학교에 못 왔습니다.

저에게 "선생님이 우리집 오면 진짜 놀라실걸요" 라고 했는데, 그 말 속에 뭔가 모를 슬픔이 느껴져서,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C학생 : 말이 거의없는 학생이어서 얼굴과 이름만 기억이 납니다.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나중에 아내와 함께 예전 근무했던 곳 근처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물이 너무 먹고 싶은데 편의점은 보이질 않고,

마침 저기 구석에 정말 작고 허름한 슈퍼마켓이 있어서 들어갔던 적이 있어요.

거의 1~2평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물건들이 팔리지 않아서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요.

슈퍼 옆에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주인 할머니가 나오셨어요.

아무래도 카드로 사긴 그래서, 현금을 드렸는데, 돈을 거슬러 주신다고 안에 있는 누군가를 부르는데, 그학생이 나오더군요.


네 맞습니다. 그 학생이 그 작은 슈퍼마켓에 딸린 방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더랬죠.


저는 그 이후 가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시 들었던 생각은


첫째. 가난은 상대적이다.

저도 어릴 때 힘들고 가난했다 어쨌다 말했었지만,

저 위에 언급한 학생들에 비하면 저는 넉넉하고 행복한 편이었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적어도 삼시세끼 따뜻한 밥은 먹고 살았거든요. 부모님의 사랑도 받았구요.


둘째, 가난을 실패의 이유로 돌려서는 절대 안된다.

저 위에 언급한 학생들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학생들이 생각보다 무기력에 많이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난 가난하니까'란 말을 많이 했었죠.


그렇지만, 또다른 한명의 학생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지역은 어렵고 힘든 대신, 장학금이나 외부 지원이 굉장히 많아요.

학비도 일단 무료이고, 기숙사도 다 무료입니다. 교재/인강 다 지원받습니다.

사실, 워낙 다들 공부를 하지않으니, 조금만 공부해도 전교1등은 금방 할 수있을 겁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여기서 벗어나겠다며 열심히 공부하더군요.

전교1등을 계속 했었는데, 나중에 돈을 지원받아

근처의 큰 도시로 유학(?)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같이 가난했지만, 이 학생은 가난 때문에라고 말하지 않고, 그 상황을 극복했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셋째.

가난은 의외로 경험한 사람에 따라 긍정적인 힘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 가난의 경험은

나중에 돈을 절약할 때나, 그리고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절약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결핍을 경험해도 잘 이겨낼 수 있었고, 갖고 싶은 것을 참는 것도 그냥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난의 경험이 저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이란 말을 거꾸로 하면

"난가?" 라고 하죠..ㅎㅎ


가난 이란 말이 어릴 때는 정말 싫었었는데,

요즘은 어린시절, 가장 가난하고 힘들었던 때가 가끔 기억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가 싫거나 우울한 기억이 아니라, 굉장히 뭐랄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어쩌면. 그 때는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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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Mihály Kö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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