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옳다는 확신보다,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 위해 법이 존재한다고 배웠다. 딱딱한 조문과 차가운 판결문 속에서도, 결국은 서로를 다치지 않게 붙잡아두기 위한 약속이라고. 바람이 세게 불어도 흩어지지 않도록 묶어두는 매듭 같은 것이라고.
사도법관으로 불렸던 김홍섭 판사는 법을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일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그는 재판이 끝난 뒤에도 당사자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고 한다. 판결문에 남지 않는 사정들, 법전의 여백에 적히지 않는 한숨들까지 들으려 했던 사람. 법이 옳다는 확신보다 사람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 나는 그 태도를 떠올릴 때마다 법정 안의 공기가 조금은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한때 나는 법이 앞에서 세상을 끌고 간다고 믿었다. 더 나은 조항이 만들어지면, 더 정의로운 판결이 내려지면, 사회도 그 문장을 따라 한 걸음 옮겨갈 것이라고. 잘 다듬은 문장이 어두운 방에 불을 켜듯 세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나 입법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간은 내 생각의 속도를 늦추었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 형광등 불빛 아래 길게 이어지던 회의들. 종이 위에 겹겹이 쌓이던 수정안, 커피가 식어가도 끝나지 않던 토론. 단어 하나를 두고도 몇 번이고 되돌아가 묻던 질문들. “적절한가.” “과하지는 않은가.” “혹시 누군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그때 처음 알았다. 법은 생각보다 느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법은 종이 위에 잉크로 먼저 새겨지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이다. 아무리 정교한 문장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감각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금세 메말라버린다. 반대로 아직 거칠고 서툰 조항이라도 이미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사회는 아주 미세하게 방향을 튼다. 법은 앞장서 달리는 기관차라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걸어온 길 위에 조용히 놓이는 레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법철학은 법을 사회적 약속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명령이 아니라 공동체가 동의한 규칙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법은 결국 관계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 이야기를 중간에 자르지 않는 태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곁에 머무르려는 마음. 그 자리에서 이미 법의 토양이 만들어진다.
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인권을 예외를 보호하는 장치라기보다, 인간의 의존을 보편적 조건으로 인정하는 사회의 자기 이해라고 생각해 왔다. 누구도 완전히 혼자 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누군가의 연약함이 특별한 결함이 아니라 우리의 공통된 조건임을 인정하는 것. 그 순간, 인권은 선언문 속 문장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공기가 된다.
나는 한동안 “법이 사람을 살리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답을 찾겠다고 애쓸수록 문장은 더 단단해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조심스러워졌다. 누군가 “그래서 정답을 찾았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요, 아직은요. 대신 질문을 놓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답을 쫓기보다는요. 질문을 품은 채 오늘을 살아보는 쪽을 택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사람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자리에서 법만 앞서 달리면, 그것은 쉽게 금이 간다는 것. 마르지 않은 땅 위에 급히 세운 기둥처럼, 겉은 멀쩡해 보여도 작은 흔들림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기다림을 생각한다. 기다림은 손을 놓고 앉아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조용한 책임에 가깝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 냉소가 입술 끝까지 올라와도 삼키는 일. 법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사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일.
우리는 묻는다. “그런다고 바뀌어?” 그 질문에는 피로와 실망이 섞여 있다. 세상이 너무 자주 우리를 배반해 왔다는 기억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질문을 함부로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생각해보려 한다. 변화는 거대한 장면으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역사책에 굵은 글씨로 남는 순간이 아니라, 식탁 위에서 건네는 한마디, 이전보다 조금 부드러워진 시선, “그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조용히 말해보는 용기 같은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고.
인권은 완성된 제도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한 사람,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 한 사람을 통해 이미 숨 쉬고 있다. 희망도 아마 그런 모양일 것이다.
희망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이 아니라, 아직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오늘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 내가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그 자리에서 이미 시작되는 것. 사람이 곧 희망이지 어떤 결과가 희망은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한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문장을 조금 더 정직하게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단어를 조금 더 오래 만져본다. 누군가는 자기 자리에서 질문을 내려놓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거대한 확신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작고 분명한 감각 때문에.
언젠가는. 아주 천천히라도.
사람이 먼저 달라지고,
그 뒤를 따라 법도 조용히 달라지기를.
그날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희망은 아마, 그렇게 하루를 건너는 태도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