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리힐데 Jan 07. 2023

나는 너랑 사는게 왜 이렇게 힘들까

나는 누구인가

가끔 살다보면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게 정말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죽하면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까.


사실 난 요즘들어 이 말에 공감할 때가 많았다.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유명한 말,

  
"타인은 지옥이다".


죽은 후 세 영혼이 한 방에서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할 때, 출구없는 곳에서 서로의 속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순간, 희곡의 마지막에 가르생은 말한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었다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타인과 함께할 때 필연적으로 '객체'가 될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모습이 지옥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의 타인의 시선 속에서 축소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나는 매우 불편했다. 복잡하고 정교한 '나'라는 사람을 타인이 너무나도 단순하게 정의내려 버리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가 축소되는 느낌이 싫었던 거다.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다. 모두가 자기 삶의 주체이기에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다. 나와 아무리 가까운 존재라해도 내 인격의 복잡성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은 타인일 뿐. 즉, 그들에게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나'로 존재할 뿐, 진정 내가 느끼는 '나'일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타인의 언어로 단순화작업이 마쳐진 후, 그들 마음 한 켠에 쌓일 뿐이다.


심리적 거리가 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괘념치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한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닥 궁금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이 나를 단순화하려고 할 때, 분노가 일어난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뭔데?"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가끔 나는 '나'를 잃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나조차도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보기 시작한다. 내 삶에서조차 내가 '객체'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물론 말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체화해보고 싶었다. 타인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의 서랍 속에 내가 축소, 과장, 포장, 왜곡되어 정리될 때 느끼는 나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 속에서 나는 뜻밖의 수확을 건졌다. 바로 '식이장애'가 찾아왔던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한 것이다. 남들은 나를 [아름답다;예쁘다;매력있다;날씬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남들이 나를 보며 [못생겼다;뚱뚱하다;살쪘다;패배자다] 라고 생각할 것이라 믿어버렸던 건 아닐까? 그래서 열등감에 의해 건강을 해치며 다이어트를 했고, 끊임 없이 타인으로부터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갈구했던 건 아닐까?


핵심은 이렇다. 나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때문에 분노한다고 말하지만, 이건 틀린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타인이 지옥이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내가 남의 시선을 어떻게 판단했는가', 이것 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축소되고 왜곡당하는 스스로의 삶이 지옥으로 느껴졌다면, 그것은 내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왜곡되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02년에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는 이런 말을 전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나'도 아니다. 나는 '당신이 날 이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라고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다".


타인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우리는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의 사회화를 이룬다. 즉 개인의 사회화는 '타인이 나에 대해 품은 생각'에 대한 자신의 상상력을 스스로 내면화시키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듯 타인은 '나'의 사회화에 중요한 존재다. 그렇다면 타인과 함께하며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방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나의 '내면' 뿐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상상을 통해 개인은 자부심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고, 죄책감 또는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대한 스스로의 상상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지는 핵심이 된다. 결국 내 삶에서 나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의 책임은 언제나 내 몫이다.


행복은 스스로 삶에 대해 가진 주체성을 어느 방향으로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의 방향키를 어느 곳을 향해 틀어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엔 아주 많은 엇갈림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