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진정한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사람마다 제각각 정의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 삶에서 힘과 위로가 되어 주는 소중한 관계를 의미한다. 어려울 때 곁에 있어 주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진정한 친구라고 하는 데는 별 이의가 없다.
주말에 친구 딸의 결혼식장에서 신부 친구들의 영상과 축가를 들으며 우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상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귄 일곱 친구가 정말 신나게 놀며 노래하는 모습이 담겼는데, 영화 ‘써니’에 등장하는 칠공주파 단짝 친구들이 떠올랐다. 사투리로 화려한 욕을 구사하며 패싸움까지 하는 과격한 친구들이었지만, 신나는 음악과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으로 그 시대를 보낸 중년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 주인공들이었다. 영화에서 이들은 결국 퇴학당하고 각자의 길로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모습을 그렸다. 중고등학생 시절 심한 외로움으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어른들이 학창 시절 친구들을 무리로 만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우정을 나타내는 유교의 덕목이나 고사성어는 많다. 유교의 삼강오륜에서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하여 친구에게 있어야 할 가장 큰 덕목으로 믿음을 말했다. 관중과 포숙아의 끝없는 베풂의 미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유비가 재갈량을 만나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하다고 말한 수어지교(水魚之交), 더 나아가 친구 대신 목을 내어줄 정도로 돈독한 관계라는 문경지교(刎頸之交)까지, 친구와의 신의와 단단한 결속을 말하는 고사성어들은 실천하기에 다소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친구와의 우정을 지란지교(芝蘭之交)로 표현한 유안진 시인은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며 관포지교보다는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맑고 향기로운 친구 관계를 원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어느날 집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수첩들을 들춰보게 되었다. 옛날 수첩에 등장하는 전화번호부를 보는데, 해가 가면서 옛 친구의 연락처들이 하나둘 줄어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시절 기억이 떠올라 연락을 한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전화번호들은 하나같이 통화가 되지 않는 과거의 번호였다. 한때의 신의나 애정은 세월이라는 물결 앞에서는 그 자취를 지키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우정도 노력해야 유지된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연락이 끊어졌다는 것은 어떤 연유든 떠나보낼 관계였지 않을까. 우정이라는 관계가 애써서 관리해야 될 정도면 외롭지 않기 위해 억지로 잡고 있는 단순한 교류가 아닌가. 그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내 마음 가는 대로 현재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오래도록 유지되는 관계는 그 관심이 지속된 사이에서만 오는 결과일 뿐이다.
『문장강화』를 쓴 상허 이태준은 ‘우정이란 정(情)보다도 의리’하고 말한다. 부자간의 천륜보다 더 강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며, 인류의 도덕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완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 또한 ‘우정에 관하여’라는 에세이에서 진정한 우정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하며 그것 이외의 다른 의무를 지워버린다고 했다. 심지어는 부모· 자식이나 형제간의 사랑, 부부의 사랑보다 더 영혼을 사로잡는 절대적인 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우정은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으니, 절대적인 우정이라는 관계는 정말 얻기 힘든 모양이다.
가족관계는 애정으로 맺어져 있다. 절대적인 사랑이며 일방적인 요구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애증이 얽혀서 많은 갈등이 있고 때로는 서로를 괴롭히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나는 가족관계도 우정처럼 유지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때가 많다. 핏줄이라는 무거운 끈은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양육이 마무리 되어 성인이 되는 순간 타자의 관계로 전환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하고. 그러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으면서 상대에게도 그런 사랑을 요구하는 집착을 버릴 수 있다. 자녀들이 성장해 갈수록, 부부관계가 오래될수록 가족의 정은 우정의 덕목으로 한 눈금씩 옮겨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된 진정한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다. 언제든 다가올 수 있고 언제든 멀어질 수도 있는 관계는 함께하는 순간에 진정으로 충실할 수 있다. 그런 관계라야 멀어진 후에 서로에게 진정한 자유를 줄 수 있다.
늙고 병든 엄마와 함께 한 시간에서 나는 진한 우정을 경험했다.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동행하며 지켜봐 주는 마지막 친구가 되어 주었다. 진정한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지금 내 곁에 있으며 교류를 맺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다. 언제까지든 연결되어 있는 순간만큼은 충실하고 의리를 나누는 관계가 되면 된다. 쉽진 않겠지만 이제 배우자와 성인이 된 자식과의 관계에게서도 맑고 향기로운 지란지교의 우정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