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둥근 보름달이 떴다. 맑은 하늘과 산들거리는 바람 때문에 더 청명한 달빛이다.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명절 차례가 종교행사로 대체되면서 집에서 고소한 냄새 풍기며 푸짐하게 음식 만드는 과정이 사라졌다. 평시보다 조금 더 다정해 보이는 창밖의 달빛을 보며 시장에서 산 송편 한 접시, 간단하게 부친 부침개 한 판을 놓고 겨우 명절 분위기를 낸다. 자식들이 미혼이라 어린아이 떠드는 소리도 없으니, 북적거리는 분위기는 기대할 수 없다.
형제가 없어 혼자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는 북적거리는 가정이 늘 부러웠다. 시골에 살 때는 온 마을이 함께 명절을 보내기 때문에 그날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진학을 하고 서울에 엄마와 둘이 살 때 명절이면 유난히 쓸쓸함을 느꼈다. 남들처럼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해 상을 차리지만 단둘이 지내는 차례는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혼인으로 새로운 가족이 생겼을 때 북적거리는 명절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시아버님은 유난히 가족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셔서 명절이면 오형제와 그 자손들을 전부 소집하셨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며느리라는 위치가 그 잔치를 제대로 맛보기는 힘들었다.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또 아이들까지 수발하기 바빴다. 서른 몇 평의 아파트에 이십여 명이 함께 숙박하며 이틀을 보내고 나면 그야말로 매번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혼자 계시는 친정 엄마 때문에 그 분위기를 마음껏 즐길 수 없기도 했다. 엄마는 차례상을 준비해 놓고 사돈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오는 딸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침내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가 도착하면 그때서야 친정아버지 차례상을 모실 수 있었다. 결혼생활 연차가 쌓여갈수록 북적거림에서 벗어나 오붓한 우리만의 시간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상상 속에서 기대하던 대가족의 풍요로움은 어릴 때부터 익숙하지 않던 환경이라 현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양가에서 모두 명절차례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자녀들이 장성하여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니 각자의 가정이 새로운 가족으로 분리되었다. 성당에서 명절 미사를 드리고 나면 친정이나 시댁으로 오는 아이들을 맞으러 분주히 흩어진다.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어찌보면 좁은 범위의 ‘내 가족’만 챙기는 문화가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조카들까지 함께 부대끼던 대가족의 명절은 옛일이 되었고, 온 마을이 더불어 즐기던 축제는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한가위의 가족 축제가 없어지니 시간의 여유가 생겨 오랜만에 연속으로 영상을 시청했다. 이혼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였다. 이혼 사건을 들고 법정으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재산을 놓고 다툰다. 그런데 정작 이혼하는 부부에게 제일 힘든 것은 자녀 양육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없는 부부들은 지나온 결혼생활의 책임을 놓고 다툰다. 그리고 결과는 재산의 분할율로 깔끔하게 결론이 난다. 그런데 둘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경우는 문제가 훨씬 복잡해진다.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이혼을 하더라도 둘 사이는 자녀로 계속 연결될 수밖에 없기에.
이혼과 재혼이 드물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을 보면 그 형태가 다양하고 핏줄에만 집착하지 않는 가족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혼 후 새로운 부모와의 관계를 구성하게 되거나 출산이 아닌 입양으로 연결되는 가족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물론 우리의 현실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나 민족에 대한 결속이 강한 것이 우리나라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면에 우리가 아닌 울타리 너머의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더 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결혼은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가족의 울타리가 핏줄이라는 기준으로 지나치게 엄격해지면 불행이 싹틀 수밖에 없다. 오직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 보살핌, 배려가 있을 때 혈연이 아닌 가족도 만들어질 수 있다. 유난히 맑고 둥근 한가위 보름달을 쳐다보며 우리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조금 더 넓어지고 더 둥글어졌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