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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Sep 11. 2024

서른 살의 가을

서른을 넘기면 안 된다고 했다. 남자의 결혼 적령기는 스물일곱, 여자는 스물셋이란 통계조사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이미 한참 늦은 시기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치레로 건네는 “언제 결혼해?”란 말은 독신주의자에게 참기 어려운 고문이었다. 남들의 시선은 어찌어찌 견딘다 해도 젊은 날 남편을 떠나보낸 여인의 외동딸 처지에서, 엄마의 호소는 마치 대부에서 돈 콜레오네가 하던 ‘거부할 수 없는 제안’ 같았다.


죽음을 불사한다는 엄마의 협박에 굴복하여 나는 중매 시장의 매물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안을 수락하는 순간부터 엄마의 전화통은 시도 때도 없이 울렸고, 나는 마치 곡예를 하듯 잡혀있는 맞선 일정을 수행해야 했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딸랑딸랑 종소리를 울리며 맞선 상대를 찾는 종업원을 향해 소심하게 손을 드는 신세를 겪기도 했다. 차 마시고 헤어지면 즉석 거부, 식사까지 하면 고민 정도는 하는 반응, 중매쟁이를 통해 거부 의사를 전달할 때마다 가자미눈으로 흘겨보는 엄마의 질책을 참아 내야 했다.


몇십 번의 맞선에서도 결국 나는 배필을 만나지 못했다. 애초에 결혼하겠다는 확신 없이 응하는 만남의 자리는 서로를 거북하게 할 뿐이었다. 어떤 상대든 상관없으니, 엄마의 소원대로 결혼해서 살아주겠다는 생각은 나의 오만이었다. 평생 배우자 없이 청상으로 산 사람도 있는데, 극단의 경우만 아니라면 어떤 남자와도 맞추며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맞선을 보면서 깨달았다. 단 몇 시간의 만남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 평생 모든 시간을 공유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엄마에게 더 이상 맞선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독신주의는 포기했으니 안심하라고 하며. 엄마는 서른을 넘기면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악운이 따른다는 아홉수라서 스물아홉의 일 년은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의 시간이었다. 직장 상사였던 남편의 친구는 우연한 만남이라고 하며 그 남자를 회사 회식 자리에 합석시켰다. 서른이 되면서 다시 엄마의 압박이 시작되었고 나는 마침 소개받아 만나던 그 남자의 조건을 따져보게 되었다. 착하고, 말이 적고, 안정된 직장, 오 형제의 막내, 이런 조건들은 서른의 여자를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자연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해 가을 우리는 양쪽 집으로 인사를 다녔고, 청첩장을 박은 뒤 드레스를 입었다.


내가 계산한 그 남자의 조건은 결혼과 함께 부실이 드러났다. 착한 것인지, 생각이 없는 것인지 헷갈렸고, 말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답답함이 도를 넘었다. 오 형제의 막내라도 결혼 후 시부모와 사 년을 동거했으니, 서로의 관계를 깊게 할 신혼마저도 놓치고 말았다. 남편 또한 자신만의 기준으로 여자의 조건을 저울질했으리라. 시원시원하게 말도 잘하고, 튼튼해서 몸 걱정할 필요도 없는 여자, 처가에 형제자매도 없으니 장모님 사랑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그러나 현실은 어땠을까? 직장 생활을 핑계로 집안 살림은 배울 생각도 없고, 튼튼한 몸은 결혼과 동시에 여성으로서 매력은 찾아보기도 어려웠으니. 피차 판단 착오를 후회했으리라.


그렇게 삼십 년 넘게 함께 살았다.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은 일찍 깰수록 좋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믿으며 부부는 철저한 생활인이 되어갔다. 맞벌이에 세 명의 아이 양육은 부부 분열의 여지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육아기에 시부모님과의 동거는 갈등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갖게 했고, 성격 급한 장모님과 평생을 함께 살기에는 말 없는 남편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조석으로 주고받지 않아도 부부의 연결이 끈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숙한 상태에서 어른이 되었던 서른 살의 가을, 삼십 년 동안 책상에서 익히던 세상 공부는 드디어 실전에 들어갔고,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크고 작은 고비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일찌감치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렸기 때문일지. 결혼도 그저 또 하나의 관계일 뿐이라고.


상대를 인정하고 나의 부족을 깨달으며 우리는 만남을 성사해 나간다. 결혼 또한 이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서로를 향해 걸어가면서 주례 앞에서 하던 맹세처럼. ‘괴로우나 즐거우나, 병들거나 건강하거나, 서로를 배려하며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서른, 그해 가을은 미숙했지만, 삼십 년을 믿음으로 지켜왔으니 남은 시간도 그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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