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 오드리 헵번은 참으로 아름답다. 반짝이는 눈동자, 순진하게 깜짝 놀라는 모습, 티 없이 맑은 웃음, 젊은 그녀의 외모는 어느 한 곳 눈길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기자와 공주로 출연한 이 영화는 뻔히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볼 때마다 공주 역할의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든다.
얼마 전 행사에 등장한 어떤 여배우와 스무 살 연상 남편의 ‘동안’ 외모가 뉴스에 보도 되었다. 보도 내용대로 사진으로 등장한 두 사람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여배우는 직업 특성상 외모를 가꾸는 것이 당연해 보였지만 칠순이 넘은 남편의 외모는 정말 놀라웠다. 내 눈에는 한 오십 살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나이 들어도 젊은 외모는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다.
나이 들어 생기는 주름을 없애기 위해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피부에 좋은 음식부터 화장품, 더 나아가 약품이 사용되기도 한다. 주름을 없애고 팽팽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맞는 다는 보톡스 주사는 보통 명사처럼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주사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부어올라 흉한 모습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라지는 모발과 늘어나는 주름은 노화의 상징으로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한다.
인간은 누구나 늙는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신체는 조금씩 기능이 떨어진다. 젊은 시절 뽐내던 싱그러운 외모도 흰머리와 주름투성이 얼굴로 변한다. 우리는 점점 더 오래 살게 되었고 그럴수록 더욱 길어진 노년의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당연한 말인데도 누가 ‘나이 들어 보인다’라고 한마디 하면 풀이 죽고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열심히 피부를 가꾸고 젊어 보이기 위해 유행하는 패션을 쫓아간다. 젊은이들이 하는 취미도 무리해서 배워본다. 그러나 늙음은 막을 수가 없고 시간이 갈수록 자존감만 떨어질 뿐이다. ‘9988’이라고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고 구호를 외치지만 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은 계속 진행된다. 매일매일 늙음을 한탄하며 남은 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점점 노화되어 가는 신체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지혜로우면서도 아름답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말년의 오드리 헵번은 후진국으로 건너가 빈곤한 이웃들을 구제하는 자선의 삶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이 주름이 가득했다.
노인의 얼굴은 주름지고 머리는 백발이 되지만 주름진 뇌에 축적된 평생의 경험으로 노화의 과정을 지혜롭게 맞이하면 좋겠다. 오드리 헵번이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시의 일부분을 읽어보자. 외모의 아름다움도 젊은 시절의 기준과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입술을 갖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아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아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다면 결코, 당신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오드리헵번)
아름답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과 정신의 조화로운 노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미의 사회 통념상 기준이 우리의 인식에 아주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신체적 나이 듦을 아름다움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곱고 팽팽한 피부, 검고 반짝이는 머릿결은 오랫동안 우리를 사로잡던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의 피부는 쭈글쭈글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고 검은 머리는 희끗희끗해지다가 어느덧 백설처럼 하얀빛이 된다. 근육은 날이 갈수록 허물어지고 굽은 등과 휘어진 다리는 노년의 상징이 되어간다. 이런 외모를 감히 사랑한다고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 몸의 상태는 젊은 시절로 절대 되돌아가지 않고,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신체를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나이 듦을 내 인생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면 신체의 노화와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정신은 나이 들수록 성숙하고 지혜로워지고, 공부하며 점점 발달할 수 있다. 오래 살아온 경험 덕분에 젊은이보다 더 뛰어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이 듦에 따라 위축됨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온다. 신체의 기능 축소와 정신의 자신 없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조화롭고 평안한 노후의 삶의 유지가 가능해진다. 스스로에게 가끔 힐링의 시간을 주고 토닥거려 몸과 마음을 잘 거느리며 그렇게 늙어갈 일이다. 젊은 시절 눈부시게 빛나던 모습 못지 않게오드리 헵번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이 아름답다. 이것이 참다운 늙음의 의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