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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Jul 10. 2023

보리밥집에서 만난 사람.

커피까지 받을 수 없어요..

오랜만에 엄마와 둘이서 바깥나들이를 한 주말이었다.

목적지는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어릴 적에 살았던 동네였는데 공복으로 간 터라 몹시 배가 고파서 도착하자마자 엄마가 좋아하는 보리밥집으로 허기를 해결하러 갔다.


입구로 들어서니 몇 년 만에 갔어도 여전한 보리밥과 숭늉의 구수한 냄새가 코의 감각을 자극했다.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2인 상을 주문하자마자 갖가지 색을 띠는 반찬이 깔리더니 건강하고 맛있는 한 상이 빠르게 차려졌다.


떡볶이로 유명한 시장이 있는 동네라 매번 갈 때마다 나는 엄마한테 오늘은 떡볶이를 먹겠다고 우격다짐을 벌이지만 "그럼 떡볶이 먹자" 하며 당신이 먹고 싶던 보리밥 포기 선언을 하는 엄마를 보며 매번 져드린다.

도착 시간이 다가오면서 점점 배가 고파온 엄마는 내게 "진짜 떡볶이 먹을 거가?" 물으셨는데 이번에도 다를 바 없이 "그냥 보리밥 먹자." 하며 져드렸지만 사실은 이동하는 길에 이미 마음속으로 떡볶이보다 나물 반찬이 가득한 보리밥으로 노선 변경을 했다.


계절을 담고 있는 듯한 보리밥 한상은 더운 여름날에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고 요즘 먹고 싶은 게 없다던 엄마와 내 앞에 놓인 수저는 그 공간에 있는 어떤 것보다 바빠졌다. 정겨운 스댕 그릇에 담긴 보리밥을 반쯤은 젓갈을 올려 쌈을 싸 먹고, 반쯤은 남아있는 반찬을 다 털어 넣고 강된장을 넣어 비벼먹었다. 배가 불렀지만 마무리로 나오는 숭늉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옛날부터 배가 부르거나 먹기 싫으면 아까워하지 않고 남기는 편이지만 이런 좋은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거의 설거지하듯 야무지게 먹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에도 땀구멍이 있다면 땀을 흘렸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볼 정도로 먹어댄 것 같다.


아 배부르다! 내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커피잔을 보며 뿌듯해하는 것처럼 싹 비워진 그릇을 보신다면 사장님도 뿌듯하실까?

계산을 하려고 나오는데 처음 들어올 때 구수한 냄새가 퍼지던 것과 다르게 약간.. 그러니까 표현하자면 꾸리한 냄새가 났다. '어디서 이런 냄새가 나는 거지?' 속으로만 생각하며 계산대에 서계신 사장님을 보는데 사장님의 시선이 입구 쪽을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70대로 가늠이 되는 노숙자 한 분이 서 계신 것이다. 상당히 굶주린 모습이었고, 사장님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고 냄새만 따라갔더라도 그 냄새의 원인을 알 수 있을 만큼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어느 때보다 잘 먹고 배부른 나 자신이 민망해졌다.


먹을 것을 파는 식당인데 아무래도 얼른 돌려보내야 했기 때문인지 사장님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멀찍이서 건네주셨다. 약간 찌푸린 표정으로 건네는 모습이 좀 아쉬웠지만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폐 한 장이라도 누군가를 위해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감사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얼른 계산을 하고 천 원짜리 한 장을 쥐고 나간 어르신을 따라가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쥐여드렸다.

"어르신. 제가 현금이 이것밖에 없어요. 작지만 보태서 뭐라도 사 드세요."

그분은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있는 내게 다가오는 엄마의 손에는 믹스커피의 달달한 향이 나는 종이컵이 들려 있었다. 내가 계산을 하고 인사를 하는 사이 손님에게 제공되는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아 드셨던 거다. 커피 향이 워낙 좋았기 때문인지 어르신께서 커피잔을 한참 쳐다보고 계시길래 식당으로 다시 들어가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내 몫의 커피 한잔을 더 뽑아서 나왔다. 거동이 불편하셨던지 벤치에 앉아계시는 그분께 종이컵을 내밀었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커피까지 받을 수 없어요. 커피는 그냥 드세요." 하며 당신의 갈 길을 가셨다.


어르신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나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혼잣말을 하며 생각했다. 아무쪼록 건강히 살아가시기를 바란다고.



거동이 불편하셨던지 벤치에 앉아계시는 그분께 종이컵을 내밀었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커피까지 받을 수 없어요. 커피는 그냥 드세요." 하며 당신의 갈 길을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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