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쿠키를 구워 포장하고 있는데 손님께서 "커피 한잔 주세요~"하며 부르시길래 "네에~" 대답하며 얼른 뒤돌아보았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일상적 모습이다.
그런데 세상에.. 눈앞에 서있는 사람은 내가 서울에서 8년 동안 일했던 곳의 대표님이었다. 일반적으로 아는 그런 사장님이 아니라 내게 바리스타로서, 리더로서, 사람으로서 살아가며 필요한 모든 부분 가르침을 주신 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와서 새 직장에서의 입사와 퇴사, 자영업 준비와 자영업을 시작한 지금까지도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시는 멘토님이다.
서울에 그것도 날마다 바쁜 사람들로 가득 찬 성수동에 계셔야 할 분이 김범수의 노랫말처럼 내 눈앞에 나타나~시다니! 사실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릿속에서 사고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고 얼굴을 본 순간 아주 잠시 입을 떡 벌린 채로 멍하니 서있었다. 연락도 없이 멀리 창원까지 서프라이즈를 하시다니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데 매장 준비 때문에 서울에 가서 잠깐 뵌 이후로는 통화만 하던 멘토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나의 멘토. 감사하기만 한 이 분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에 멍이 든 듯 아파오는 이유는 내가 서울을 정리하고 내려온 이후의 일 때문이다. 오랫동안 관리자로 그분 밑에서 일을 했던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 무엇보다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고 하셨고 자연스럽게 신경 쓸 일이 배로 많아지셨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예사로 들었는지 새 직장에 적응하며 정신없이 사느라 신경 쓰지 못하고 연락을 한참 동안 못 드렸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는데 그때 멘토님은 아프셨다고 한다. 당신이 아픈 와중에도 내가 걱정할 걸 걱정하셔서 괜찮아지고 나서야 말씀하셨는데 항암 치료와 수술, 회복하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모른 채로 혼자 바쁜 척하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멀리 있어 뵙진 못하더라도 내가 더 잘하자고, 자주 생각하는 만큼 연락도 자주 드리자고 하면서도 매번 멘토님이 먼저 전화를 하신다.
그러면 나는 또 "아 이번엔 제가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궁색한 변명을 하며 다음번엔 내가 전화할 때까지 하지 말아 달라고 반 강제 부탁을 드린다.
내 매장을 서프라이즈로 찾아주신 날, 멘토님의 일도 있으시고 내가 바쁘기도 해서 대화를 길게 못했지만 서로서로 눈빛만으로도 무언의 말들의 오고 가는 게 느껴졌다. 커피를 여러 잔 주문하시고 봉투 하나를 쥐여주고 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내가 참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
SNS를 통해 먹태깡이라는 과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허니버터칩 대란이 일어났던 이후로 이런 난리는 또 처음인 듯했다. 군것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모를 수도 있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먹태깡이 먹고 싶었다. 그런 것들에 관심두지 않는 나도 편의점 브랜드마다 앱을 다운로드해서 그 바쁜 출근길에 재고를 찾아볼 정도로 먹고 싶었다. 하지만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었다. 먹태깡이 뭐라고..
"저 그거 먹고 싶어요 먹태까앙~~"
내일모레 마흔인 주제에 과자 하나 때문에 멘토님께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편의점 점주님이기도 하신 나의 멘토님은 워낙 하는 일이 많아 바쁘신 분이지만 흔쾌히 그게 뭐 일이라고 재고가 없으니 입고되면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말은 했지만 바쁘고 정신없으셔서 잊고 지나가도 괜찮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마음으로는 몇 박스로 받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젯밤 멘토님께 연락이 왔다. 주말에 들어온 먹태깡이 딱 네 봉지뿐이었는데 직원이 그중 한 봉지만 챙겨놨다고. 먹고 싶어 했으니 우선 맛만 보라고, 과자 비용보다 택배비용이 더 큰데도 굳이 한 봉지를 보냈다고 하시며.
"과자 한 봉지를 택배 보내기가 민망하네."
"과자 한 봉지만 택배로 받기도 죄송하네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요."
서울에서 남쪽까지 다소 가벼운 택배 상자는 빠르게, 무사히 내게 도착했다.
요즘같이 내 것 챙기기도 바쁘고 귀찮은 세상에 과자 한 봉지를 택배로 보내주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참 복도 많다.
요즘같이 내 것 챙기기도 바쁘고 귀찮은 세상에 내게 과자 한 봉지를 택배로 보내주는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