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 초딩의 생활은 6학년 때도 계속 이어졌다. 매달 14일마다 무슨무슨 데이가 있는데 그런 날엔 아침에 등교해서 보면 내 책상 위에만 뭔가가 가득 올려져 있었다. 그래도 반 친구들 앞에서 거만 떨지는 않았고 조용히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갔다. 나는 먹지도 않으면서 선물 받은 것들을 한쪽에 모셔두기만 했었다.
당시 일곱 살 어린 사촌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내가 학교에 간 사이 할머니는 동생에게 내 것들을 하나씩 쥐여주셨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는 인사와 동시에 내 소중한 간식꾸러미를 확인하고 하나가 줄어있으면 얼른 할머니께 달려가서 윽박을 질러댔다.
"내 건데 왜 내 허락도 없이 쟤를 주냐고!"
그러면 할머니는 달래듯이 말씀하셨다.
"아이고 아가 아끼면 똥 된다이. 동생 주는 긴데 뭣이 아깝노."
잔뜩 뿔이 난 나는 가만히 날 쳐다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동생의 시선을 외면하며 창문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째려보고 있었더니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났다.
동생이 태어나고 온 집안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때 내 관심 역시 오로지 동생이었다. 하지만 나도 너무 어려서 행동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혼난 적이 몇 번 있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때는 동생의 아빠인 큰삼촌이 내게 수건으로 툭 치며 "네 동생인데 그런 것도 못 참나."라고 했을 때였다. 때린 건 아니었지만 늘 예쁨만 받고 터치 한번 안 받았던 내 입장에서는 그것과 다름없었다.
어른들은 모른다. 정말 모른다. 주기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닌데. 미워서 질투 나서 그런 게 아닌데. 나도 내 생각이 있는데.
어린 동생도 아마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나는 그 동생을 위해 싸우다가 동네의 쌈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생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던 나의 당연한 행보였다.
성장하면서 나름의 많은 변화를 겪던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나의 중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끔찍한 때가 많다.
도시락을 같이 까먹는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한 적도 있었고, 아침 등굣길에 변태를 처음 만나기도 했다. 게다가 집은 집대로 난리였다. 무슨 귀신이라도 씐 듯이 어른들이 언쟁을 벌이다 집 이곳저곳이 와장창 깨지고 부서진 적이 많았다. 심할 때는 깨진 유리문을 미처 수습하지 못해 새어 들어오는 찬 기운 때문에 잠을 설친 적도 있다.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와장창 난리가 날 때마다 욕실에 들어가서 어린 동생을 껴안아 귀를 막아주었다. 벌벌 떨면서 울고 있는 동생과 달리 나는 떨지도,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독하게 마음먹었다. 내가 동생을 지켜줘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생겼다.
내가 우리 동네에서 쌈닭 소리를 듣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동생이 동네 다른 아이에게 이간질을 당했는데 이간질 사태의 주요 인물인 한 아이가 우리 집에 전화해서 동생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있다가 내가 수화기를 뺏어 들었을 때 "이 씨발."이라고 하는 것을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느닷없는 된소리에 적잖이 놀랐지만 일단 물었다. "누구야 너?"
동생이 아닌 걸 확인한 상대방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날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내 동생은 지금까지도 남 욕 한번 하지 않고 착하다 못해 기차 안 옆자리 사람한테 말을 못 해서 화장실을 못 갈 정도로 자기 할 말도 못 하는 바보다. 오해가 단단히 있는 듯 하지만 일단 나는 가까이 있는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똑똑.
문이 열리고 아이의 엄마가 나왔고 그 뒤로 그 아이가 보였다.
나는 뒤쪽을 쳐다보면서 "할 이야기 있지 않니? 잠시 나와볼래? 동생이 말을 못 하겠대서, 내가 설명해 줄게." 하고 말했는데 갑자기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버티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이의 엄마는 다짜고짜 내게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도 아니고 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그래서 나는 공손하게 당신의 딸이 우리 집에 전화를 해서 어떤 짓을 했는지, 오해에 대해 설명해 주려고 왔다고 말했더니 내게 대답하는 대신 딸에게 들으라는 듯 아주 크게 말했다.
"엄마가 그런 애랑 놀지 말랬지!"
그 한 마디에 내 머릿속 필름이 오래전 그날로 돌아갔다.
삼촌과의 불화가 잦았던 숙모가 떠나버리고 동생은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었다. 이혼이라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동네 어른들의 안주거리가 되고 동네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매일 발발거리고 돌아다니던 동생을 찾아다니다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들이 동생에게 엄마 없는 애라며 놀리고 있었다. 동생은 그 아이들이 하는 말의 의미도 모르면서 그저 술래잡기 놀이의 술래라도 된 것처럼 멋쩍게 웃고 있었다.
야!!!! 나는 목구멍이 터져라 외치며 뛰어가서 아이들 앞의 허공에다 발차기를 하며 말했다.
"너희 내 동생 괴롭히면 내한테 죽는다!"
금세 현실로 돌아와 아주머니의 "엄마가 그런 애랑 놀지 말랬지!" 한 마디가 모기처럼 귓가에 기분 나쁘게 맴돌았다. 순간 열이 확 오르면서 흥분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애가 아주머니의 딸 같은 애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뭐 이런 도라이가 다 있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소리만 빽빽 지르는 아주머니를 몇 번이고 상대하다가 동네 구경거리가 되었고, 그렇게 나는 어린 주제에 어른한테 대들고 뭐라 그러기까지 하는 경우 없는 쌈닭으로 찍혔다.
그런 별명이야 아무렴 상관없었다. 다만 소리만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서 알았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어른이라고 다 어른답게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고, 혹시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잘 싸우기 위해 단어 하나라도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날부터 틈틈이 국어사전을 보았다. 무작정 목소리를 키우는 것보다는 내면을 키운 뒤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똑똑한 사람이, 근거 있게 행동하는 올바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