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사고부터 쳤던 소심한 4학년 짜리 전학생은 계획했던 대로 담임선생님과 가까이하지 않고 학년의 반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웃이 아직 익숙지 않은 동네에도 함께 적응하는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집에서 1분만 걸어 나오면 있는 구멍가게. 하루에 받는 몇 백 원의 용돈으로 과자를 사 먹으러 갔는데 그날따라 확 당기는 것이 없어 고민하느라 그 작은 구멍가게를 운동장이라도 돌 듯이 왔다 갔다 했다. 낮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키가 큰 주인아저씨는 계산대 앞에서 계속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감시당하는 느낌이라 눈치가 보여서 썩 맘에 들지 않는 과자 하나를 얼른 골라 계산을 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갑자기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팔을 뻗어 내민 것뿐인데도 과격한 제스처로 보였고 공격당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당연하고 합리적이라는 듯한 표정의 아저씨는 손톱에 때가 낀 시커멓고 큼직한 손으로 내 티셔츠를 쓱 올리더니 청바지의 허리춤을 만지며 앞뒤로 둘러보았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두려워서 아무 말 못 하고 아저씨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자기 멋대로 티셔츠 안과 청바지의 주머니까지 만져본 아저씨는 민망한 듯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학생을 의심한 건 아니고.. 가끔 옷 속에 군것질 거리를 넣어서 훔쳐가는 애들이 있어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요즘 세상 같으면 성폭력에 언어폭력, 정신적 피해까지 운운하며 난리가 났을 터.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이 상황에 얼마나 모순적인 말인가. 의심을 넘어 단정을 짓고 그런 짓을 했으면서.
심지어 그 아저씨의 딸은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당신의 딸이 어디 가서 그런 대우를 받으면 기분이 어떨지, 딸아이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남자어른을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무서웠고 불쾌했다.
하지만 구멍가게 아저씨가 나한테 그랬다고 집에다가 말하지도 않았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집 어른들이 괜히 나 때문에 시끄러운 일에 휘말리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인 나는 이미 너무 애어른이었다. 그냥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철없는 초딩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의 나라면. 그 일을 당한 것이 그때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라면 따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겪은 일이라 나는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착하게 과잣값만 계산하고 나왔을 뿐이다.
지금도 한 번씩 그날을 떠올리면 그렇게 치욕적이고 억울할 수가 없다.
내가 <빽 투 더 퓨처>의 에미트 브라운 박사님을 알고 있다면 자동차를 타고 그날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조를 것이고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교수님을 알고 있다면 시간을 그날로 돌리는 마법 도구를 달라고 조를 것이다.
이 동네가 나한테 텃세라도 부리나 싶을 정도로 다소 힘겨운 전학 첫 해를 보낸 후 나는 5학년이 되었고 새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쌍꺼풀이 없는 데다 잘 웃지를 않으셔서 매서운 이미지였지만 아이들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추켜세워주시고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차별하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부모의 직업과 사는 정도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했던 4학년 담임선생님과는 너무도 달랐다. 5학년 담임선생님이라도 잘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돌아본 후에야 깨달았지만 나의 5학년은 성격과 성향이 달라지면서 자리 잡은 중요한 때였다고 생각한다.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고 싶어도 참고만 지내던 나는 그때부터 제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모른 채로 그냥 지나가버린다는 것을 그때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