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사실상 사회생활을 간접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어릴 적부터 인복이 많다고 생각이 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는데 어딜 가나 대부분 좋은 어른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 영향으로 내가 가진 책임감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최악의 상사를 만난 건 마지막으로 퇴사했던 직장에서였다.
나는 부당함과 무례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사회라는 것이 할 말을 못 하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는 어릴 때부터 좀 그런 편이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속이 시원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세우는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하는 말이었다. 중학교 때 기분에 따라 이유 없이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께도, 고등학교 때 타 학교의 학생이 연출한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에서도. 나는 그게 철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 되어서도 똑같음을 느꼈다.
보통 우리 사회에서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식의 태도를 갖게 하지만 나는 더럽다고 피하지 않는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럴수록 상대해서 그게 왜 더러운지에 대해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뭐, 물론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다 피해버리면 그 사람은 계속 그렇게 살기만 할 것 같아서 나만큼은 피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의 대표님은 자신이 오너로 있는 카페의 직원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대했다. 통화품질이 좋지도 않은 옛날 전화기를 쓰고 있는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서 누구라는 설명도 없이 "야!"라는 말부터 했고 못 알아들으면 윽박부터 질렀다. 카페 업무를 보는 것만이 당연한 직원들에게 개인 심부름을 시키기 일쑤였다.
내가 인수인계를 받고 처음 입사했을 때 직원이 18명이었는데 인건비를 대폭 줄이라는 오너의 오더로 직원 수를 11명으로 줄인 데다가 100평 가까운 매장에서 시간대별로 일하는 직원 수를 2명만 두었기에 표현을 하자면 항상 똥줄 타듯 업무를 쳐냈다. 그래도 직원들은 불만 한번 표시하지 않고 나를 잘 따라주었고 우리끼리는 결속력이 좋아 즐겁게 일했는데, 쌓였던 불만을 터뜨리게 한 장본인은 대표님이었다.
주중 금요일은 제일 바쁜 날이었다.
손이 부족해도 호흡이 잘 맞았던 평일 오전시간 직원 둘은 바쁘게 주문받고 커피 내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개인적인 일로 찾아온 대표님과 손님들을 일일이 챙겨야 했다.
내가 이전 직장에서 만났던 대표님은 항상 보는 눈이 있으니 일부러 커피를 계산하고 드셨고, 요즘 카페의 특성상 서빙을 하지 않고 가져가는 시스템이라 아무리 손님이 오셨다고 한들 직원들에게 서빙을 요구하지 않고 당신이 직접 움직이셨다. 그런 참 어른의 모습만 보다가 당연하게 메뉴를 골라 말하며 자신이 앉은자리까지 가져오라고 명령하는 대표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있는 시간이었다면 어떻게든 내 선에서 알아서 했을 텐데 얄밉게도 꼭 내가 근무하는 시간만 피해서 그랬고 그런 일을 직접적으로 겪는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그날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미팅룸 자리에 들어가 앉은 지 30분도 안 된 손님들을 당신과 당신이 부른 손님이 앉아야 한다는 이유로 쫓아내고 자릴 잡아 외부음식 반입금지인 카페에서 민망해하지도 않고 떡하니 냄새를 풍기며 햄버거 세트를 펼쳐놓고 드셨다. 게다가 바쁜 직원들을 자꾸 불러댔다. 어디까지 화가 찼으면 몸을 벌벌 떨면서 말하는 직원들을 보며 내가 다 면목없었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겨우 버티던 직원들마저 떠나겠다 싶어서 점장의 입장으로 대표님께 말씀드렸다.
직원들을 좀 존중해주셨으면 한다고. 대표님이 아무것도 지키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 서비스를 강요하는 것은 모순적인 것 같다고.최대한 공손하게 부탁드린다고 한 건데 그분 입장에서는 그렇게 곱게 들리진 않았었는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살다 살다 부하 직원한테 인신공격은 처음 당해보네. 딱 기다리세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 제가 다 해고 처리할 겁니다."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본업도 카페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너가 한다는 대답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이랬다. 어른으로서도, 대표로서도 해서는 안될 감정적인 태도.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 하지도 않았고 윗사람이라는 이유로 권위만 챙기려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의 직장상사는 배울 점 하나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는 기다리겠다는 대답만 하고 매니저들을 불러 모아 미리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 매장을 오래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다만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해결 짓고 나갈게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매니저들은 그 한 마디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눈을 통해 보여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무튼 딱 기다리라던 대표님은 한동안 매장에 오질 않으셨다. 그러다 내가 휴무인 날만 가끔 방문했다고 들었다. 마주친 직원들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내게 떵떵거리며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을 다 해고해 버리겠다고 해놓고서는 그 사이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전처럼 전화해서 윽박지르지도 않고 개인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았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부탁조로 말했다고 한다. 점장인 나를 믿고 버텨준 직원들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매장을 떠나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친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너는 뭐 김새로이냐?" 하며 그런 사람이 드라마에서나 있을 줄 알았는데 측근에 있었다니 대단하면서도 자랑스럽다고 했다. 민망하지만 그때 내가 처음으로 아주 조금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살면서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고들 하지 않나. 그 말이 넓게 보면 믿음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자신을 믿는 것도 정말 중요하니까. 일단 자신을 믿어야 이외의 관계나 상황에 대해서도 신념을 갖고 대할 수 있고, 아닌 경우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