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퇴사 위기를 겪고 나와 직원들의 관계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최악의 상사 아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시간은 금세 흘렀고 입사한 지 1년이 지나 겨울이 왔다. 내가 점장으로 처음 맞는 겨울 시즌이었다. 디저트로 유명했던 우리 카페는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 가장 바쁜 때였다. 그래서 디저트에 관련한 발주는 늦가을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에는 최고 매출을 찍었다.
나와 매니저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에 13시간씩 팔다리가 저릴 정도로 일했으면서도 매출이라는 눈에 보이는 결과로 성취감을 얻었다. 그건 대표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업데이트되는 매출을 보며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게 무사히 12월을 보내고 재고가 거의 없다시피 한 냉동고를 정리하는 나를 보고 있던 대표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대표님 이번에 매니저님들이 정말 고생 많이 했거든요. 매니저님들이 아니었으면 저희 이 매출도 못 찍었을 거예요. 초과근무를 몇 시간씩 하면서도 다들 잘해줬어요. 감히 말씀드리는 건데... 저는 괜찮거든요. 이번에는 대표님이 매니저님들이라도 조금 신경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괜찮았다. 정말로 괜찮았다. 하지만 나를 도와 열심히 해준 매니저들에게는 얼마씩 보너스라도 주셨으면 해서 했던 말인데 일단 매출이 좋아서 당신 기분이 좋으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런데 그분의 사고 회로는 남달랐다. 며칠 뒤 매장으로 오셔서는 갑자기 날 끌고 가는 것이었다.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상가 1층에 있는 브랜드 옷가게였다.
"점장님 이번에 고생 많이 했으니까 내가 옷 한 벌 사줄게요."
얼이 빠졌다. 내가 그렇게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 나만 따로 데리고 와서?
"그럼 매니저님들은요?"
"내가 매니저들한테까지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다 점장 성과잖아. 매니저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점장님 필요한 건 옷이든 신발이든 다 사줄게요."
어이가 내 뺨을 때린다는 노래 가사는 이런 기분을 말하는 거였을까.
옷을 대충 보는 척하다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같이 고생한 매니저들을 두고 혼자 이런 걸 받을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받아도 같이 받고, 안 받아도 같이 안 받겠다 딱 잘라 말했는데도 대표님은 계속 진짜? 후회할 텐데? 진짜? 하며 되물었다. 뭐가 진짜냐는 건지, 뭘 후회를 한단 말인지. 상사라는 사람이 장난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순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점장님. 사람 너무 믿지 마. 매니저들 어차피 1년 길어야 2년 하고 그만둘 사람들인데 뭐 하러 그렇게 신경 써요."
사람 믿지 말라면서 저한테는 어떻게 운영을 맡기셨어요? 되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입을 꾹 다문 채로 그해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인센티브도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도 없이 스르르 계절이 지나가듯 그냥 조용히 지나가버렸다.
오는 불신에 가는 것도 불신뿐이었다.
상사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우리는 서로만을 의지하며 겨우 버텨나갔다. 하지만 돈을 쥐여 주면 욕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 어찌 된 게 갈수록 더했다. 그러다 팬데믹을 맞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운영이 힘든 점에 대해 나는 점점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탓할 상대가 없던 대표님도 내 탓을 하고 싶은 듯 나를 쪼아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의 스트레스는 흘러가질 못하고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버티다 보니 운영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더디긴 해도 괜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던 중의 어느 날, 대표님은 나를 불러 앉혀놓고 해가 바뀐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연봉 협상을 요구했다. 운영 상황이 어려우니 인건비에서 조율할 수밖에 없는데 최소 인원으로만 근무하고 있으니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은 점장인 나의 월급뿐이라는 말이었다. 그간 나는 내가 받아야 했던 수당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점장이라고 다른 혜택을 받으려고 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바쁠 게 뻔한 공휴일에는 쉬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저 내 매장이라 생각하고 묵묵하게 일한 결과가 이렇게 돌아오다니.
한 달 월급에서 거의 10프로나 줄이고 가자는 말을 미안해하지도 않으면서 멀쩡한 얼굴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제안을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듯한 뻔뻔한 태도에 치가 떨렸다. 없던 정마저 다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긴말하지 않고 퇴사하겠다고 답했다. 대표님은 이런 반응을 할 거라고는 예상도 못했다는 듯 당황해하였다. 사람을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아니, 사람보다 상황을 호구로 본 것 같았다. 최악의 상사 밑에서 3년 하고도 반년을 더 버텼는데 그 이상은 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나는 내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저 제 욕심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일했거든요. 근무 조건이 나아지지도 않는데 제 월급을 깎고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일자리가 없어서 버틴 것도 아니고요. 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직원들 덕분이지 대표님 때문이 아니었어요."
나의 단호함에 놀란 대표님은 없던 일로 하자며 나를 붙잡았지만 있던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음에 단칼에 거절했고, 나는 결국 퇴사를 했다.
내가 퇴사한 후에 남아있던 직원들도 하나둘씩 떠났다. 나만 믿고 따라준 직원들과는 아쉬운 이별을 했지만,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퇴사를 하자마자 창업 준비를 시작해서 부지런하게 움직여 내 매장을 꾸리게 됐고 벌써 자영업을 시작한 지도 일 년이 넘었다.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그때 그 카페의 오너였다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고. 내 가게를 운영해 보고 입장이 달라졌으니 생각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때와 똑같이 대처했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건 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고 그냥 그 사람의 그릇이었다는 것을. 같은 입장이 돼보고서야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