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커피 May 02. 2024

못해먹겠다 싶을 때

감정노동자로 사는 것 (7)

며칠 전 한 가족 손님이 오셨다.

한 달 전쯤인가 처음 오셨던 분들인데 노모를 모시고 따님 두 분이 오셔서 머그잔에 자국하나 남김없이 음료를 맛있게 드시고 갔던 게 정확하게 기억이 났다. 그러니 그날은 그분들의 두 번째 방문이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아침부터 커피를 찾는 분들이 많으셔서 테이크아웃 주문이 두 팀 정도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서서 기다리실까 봐 "주문 지금 바로 도와드릴까요?" 여쭤봤는데 대답이 없으셨다.

나는 다시 한번 "그럼 메뉴 결정되시면 불러주세요~" 말씀드렸다. 두 분이서 이야기를 하느라 그 말에도 대답이 없으셨다.


기다리는 동안 앞서 들어온 주문을 먼저 내드리려고 머신 쪽으로 몸을 돌려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번씩이나 내 말을 무시하고 대답이 없었던 손님의 말.


"주문 언제 해요?"


여쭤봤는데 말씀 없으시길래 앞 주문 음료 먼저 만들고 있었다고 말하며 주문을 바로 도와드렸다. 하지만 결제를 하려는데 그 찰나에도 내 말에 집중을 하지 않으시고 자꾸 말을 되물었다.


"9,900원입니다."


가격을 말씀드리는데 얼마요? 얼마? 하시는 게 정말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볼륨을 두 단계 정도 높여서 크게 다시 가격을 말씀드렸더니 돌아오는 말은


"아 거참 무섭네. 말 좀 예쁘게 하지. 올 때마다 왜 이래."


어이가 없었다. 몇 번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시길래 목소리를 더 크게 해서 말했을 뿐인데 나더러 말을 예쁘게 하라고 했다. 더군다나 두 번째 방문인 것을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올 때마다 왜 이러냐니. 순간 매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손님께서 잘 안 들리시는 것 같아서 목소리를 크게 했을 뿐인데요.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하지만 다른 의미는 없었어요."


"아 나이 먹으면 귀가 잘 안 들려."


이 말을 끝으로 그 손님은 차를 서브할 때부터 나가실 때까지 내 말에 대답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앉은자리에서 노모와 동생에게 온갖 짜증을 다 내고 있었다. 병원에서 짜증이 난 것을 나한테 풀다시피 하셨던 것 같다.


사람이니 짜증이 날 수는 있겠지만 왜 다른 일로 짜증 난 것을 나한테 푸는 걸까. 내가 '말 좀 예쁘게 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침 첫 손님을 그렇게 받고 나니 다운돼서 점심이 오기 전까지는 처져 있었던 것 같다. 빵과 쿠키를 구우면서 괜히 울컥하고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사회는 왜 이렇게 팍팍해졌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많아진 거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요즘은 매일 이런 생각뿐이다.


이 땅의 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번쯤은 했겠지. 단정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한숨이 나온다.


이전 27화 어느 날 우리 카페 현관으로 나의 아이돌이 들어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