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덕인 나에게 축구선수는 아이돌과 다름없다. K리그의 전북현대라는 팀을 응원해 온지가 18년째인 나의 아이돌은 단연, 팀의 레전드 선수로 은퇴를 할 때 20번이라는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만든 이동국 선수다.
이동국 선수는 요즘 연예인에 가까운 그러니까 각종 매체에서 볼 수 있어 남녀노소 불문하고 알아보는 공인이다. 그런데 이전에는 그라운드를 누비는 라이언킹이었다. 2009년도에 우리 팀으로 이적을 하고 이후로 쌓은 업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광을 함께한 선수다.
나는 적극적인 성격인데 반해 덕질에 유난스럽지는 않아서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방법이 유니폼 뒤에다가 등번호와 이름 세 글자를 마킹해서 입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 유니폼을 입은 날에는 정말 온 마음 다해서 응원을 했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숨도 조심스럽게 쉴 정도로 내 등에 있는 이름을 걸고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진심. 그게 내가 선수를 응원하는 옳은 그리고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나의 영웅은 2020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당시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의 점장으로 근무하던 나는 스케줄 조정이 힘들었던 이유로 은퇴식을 스마트폰 중계 화면으로만 봐야 했고 휴식시간에 밥을 먹지도 못하고 엎드려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은퇴 이후로는 TV만 틀어도 나오는 선수님이 어색했지만 그렇게라도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런데 지난주, 직접 볼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을 채워주는 소식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사는 지역을 연고로 한 축구팀의 행사에 이동국 선수가 초청되었다고 하는 소식이었다. 일요일이라 마침 쉬는 날이니 가볼까 했었지만 막상 토요일 저녁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여자라면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대자연을 맞이하던 터라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귀한 행사를 놓치게 되었다. 이불속에서 나오질 않으며 '동국이 형은 무사히 행사를 끝나고 가셨을까.' 몇 번이고 생각했다.
다음 날.
2024년 4월 22일. 무려 이번 주 월요일이었다.
점심 장사를 준비하고 있던 때였다. 활짝 열린 가게 문 앞으로 믿기지 않는 인물이 지나가는 것이다. 순간 소리쳤다. "동국이 형!!!!!!!!!!!!!!!" 정말 느낌표가 이만큼 붙을 정도로 외친 것 같다.
이동국 선수는 나를 보고 아주 살포시 미소 지으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지나가는 행인 1이 나를 알아봤구나 하는 일상의 표정 같았다.
나는 얼른 코앞으로 뛰어가서 다시 말했다.
"오빠! 저 기억 안 나세요? 저희 율소리에서 많이 봤는데!"
(여기서 '율소리'란 우리 팀의 클럽하우스가 있던 전북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다.)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선수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어!! 너 왜 여기 있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나를 알아봐 주셨다.
그리곤 구구절절 어제 행사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부터 해서 근황과 안부까지 속사포로 주고받았다. 알고 보니 우리 커피집 코앞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온 것이었다. 게다가 예약자는 이동국 선수의 친구이며 내가 사는 창원이 연고지인 경남 FC의 감독님이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이 식당 진짜 맛있거든요."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죄송해서 얼른 점심 맛있게 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1분쯤 기다렸다가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평소에도 나를 잘 챙겨주시는 사장님은 또 일부러 이동국 선수와 감독님이 계시는 테이블에 서비스 메뉴까지 챙겨주셨다.
감독님은 "아 나 여기 몇 번 왔는데 나한테는 이런 거 온 적 한 번도 없는데~ 동국이 오니까 이런 게 나오네."
장난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식사를 다 하고 나온 이동국 선수는 나를 보며 다시 활짝 웃으셨다.
"네 덕에 맛있게 먹었다. 사장님이 맛있는 걸 더 주셨어. 고마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며 아직까지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선수의 손을 잡았다. 이 꿈을 보내기가 싫어서 눈물이 찔끔 나려고 했다. 그런 나를 보던 이동국 선수는 다시
"야~아. 진짜 신기하다. 우리가 이렇게도 만나네!"
그러니까요...
기차 시간이 다 돼서 커피는 못 마시고 간다는 분과 손을 붙잡은 채로 주차장까지 나가서 배웅을 했다. 내가 봐온 시간 중 가장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어제 못 본 나의 아이돌을 창원이라는 바닥에서 장사하다가 이렇게 만날 줄이야. 올해 로또는 글렀다. 이날 이미 로또를 맞아버렸기 때문.
그렇게 로또 맞은 커피집 사장의 하루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이 붕 뜬 채로 지나갔다.
최측근들은 메신저의 바뀐 프로필 사진을 보며 연락이 와서는 김커피 번아웃도 오고 많이 힘들어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욕 들을 거라는 월요일의 드라마에 함께 기뻐해주며. 그 마음들에도 고마웠다.
사흘이 지난 목요일. 여전히 나는 구름 위를 걷고 있다.
아이돌(Idol)의 기본적인 의미는 우상(偶像), 즉 우상적인 존재라는 뜻이고, 여기에서 의미가 확장되어 '매우 인기 있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나무위키]
(좌) 나의 너른 등짝과 자랑스러운 20번 이동국 (우) 매장에 비치해 뒀던 선수 관련 도서에 사인을 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