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고 드라마보고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돌보고. 집에서만 있어도 하루가 금세 지나가버리는 사람이다. 가끔이라도 혼자 어디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소소하게라도 영화를 보거나 커피나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엄마는 귀가 본능이 엄청난 사람이다. 한 번씩 1박으로 좋은 호텔을 잡아 여행을 모시고 가더라도 잠자리에 들 때면 집을 그리워하는 사람. 강아지와 고양이들 걱정 때문에 잠시 집을 비우는 것도 잘 못하는 사람.
엄마는 주방에서 혹은 TV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도 집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어도 그런 엄마를 보면 엄마도 해소 구멍이 이것뿐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도 꺼내지 않고 기꺼이 양보를 하게 된다.
"이것 좀 봐라. 아하하하하."
TV 속 예능 프로그램이 웃기다고 나를 부를 때면 나는 대체 저게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부르기까지 하는 걸까 싶다가도 엄마는 이렇게 사소한 것에 웃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구나 이내 깨닫고 엄마를 따라서 어색하게 웃으며 반응하게 된다.
장사를 시작하고 내 시간도 잘 못 내고 사는 바람에 엄마를 모시고 어딘가를 갈 생각은 더 못하고 있어서 뭐 좋은 게 없을까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요즘따라 피로해하는 엄마를 위해 어디 마사지샵이라도 예약해서 보내드릴까 생각을 하며 걷다가 공연 홍보 현수막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진성 30주년 기념 콘서트. 그 이름하여 진성 빅쇼. 그 현수막을 보고 나서 나는 이거다 싶었다. 우리 엄마는 진성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걸 보는 건 언제나, 누구나 좋으니까.
요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 하나가 엄마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엄마가 누군가와 진득하게 만남을 이어오는 것을 오랜만에 봐서 그분께 감사한 마음에 나도 이모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려고 한다. 이모 역시 진성을 좋아한다는 이야길 듣고 나는 얼른 콘서트 티켓 두 장을 사버렸다. 티켓오픈날이 지나서 예매한 거라 완전 가운데 앞자리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시야에서 볼 수 있는 좌석이었다.
추석이 오기 전에 콘서트 티켓이 배송됐다.
엄마는 혹시 잃어버릴지도 모르니 티켓은 나더러 가지고 있으라고 하며 내가 찍어서 보내준 티켓 사진을 이모에게 전달했고 이모는 딸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가서 지내다가 콘서트 전날에 오기로 하셨다. 콘서트가 뭐라고. 엄마와 이모는 설레어하시는 것 같았고 덩달아 나도 기분 좋았다.
연휴는 쏜살같이 지나갔고 연휴의 후유증으로 목금토 장사만 했지만 체감 피로는 높았던 주간. 일요일 늦잠을 자고 남아있는 추석 음식으로 잡탕을 끓여 맛있게 먹고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을 때였다. 마침 참가자가 진성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고 보니 날짜가 다가오네? 하면서 달력을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9월 28일 날짜 아래 서툰 글씨로 '진성'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점점 깜빡하는 게 심해지는 엄마가 콘서트 날짜를 잊지 않기 위해 써둔 건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웃긴 일이 아니다. 포인트는 콘서트 날짜로부터 이틀 후인 9월 30일. 엄마의 하나뿐인 딸 그러니까 나의 생일이다. 엄마가 고생해서 나를 낳은 날. 그런데 9월 30일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았다. 나는 이게 서운하지도 않고 그저 웃겼고 동시에 애잔했다. 얼마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걸까. 그런 마음에.
엄마의 경험이 좁아서 엄마의 세상이 좁게만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많았던 게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컸고 어느 노랫말처럼 있을 때 잘하자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