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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Sep 29. 2024

엄마의 잠꼬대

엄마와 나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지 내가 30대, 엄마가 50대가 되어서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오래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엄마와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날씨나 경제라던지 방송이나 영화 같은 분야별 뉴스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면 몇 마디 이상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부터 다른 지역에서 자취를 하며 지냈고 사회생활도 꽤 오래 했던 터라 엄마와 떨어져 있는 동안 내 생각이나 신념 같은 것이 이미 정립이 되어 있었다. 주관이 강하고 고집 있는 딸과 원래도 욱하는 성질인데 갱년기를 겪는 중인 엄마. 모녀의 본격 동거가 시작된 후로는 당연히 싸우는 일이 잦았다.


가끔 너무 화가 날 때는 머리가 좀 컸다고 엄마에게 못된 말도 서슴지 않고 했다. 대부분 못된 말이라기보다 팩트였다. 팩트는 언제나 상황이었고 내 기억으로 우리 집의 상황은 항상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티 내면 엄마가 힘들까 봐 사춘기도 곱게 보냈고 나의 상황과 환경을 탓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질풍노도를 30대가 되어서 겪을 줄이야. 문제는 나였다.


사실 사는 건 다 힘들고 어렵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주변에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그게 부러운 건 아니었지만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아 보이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런 마음을 티 낼 수 없었고 엄마에게 입에서 면도칼을 뿜어내듯 매번 날카로운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럴 땐 입을 꾹 닫았다. 엄마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말없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크게 들은 적도 있었다. 한 번씩 그런 때를 겪으며 엄마와의 동거가 3년째가 되었을 즈음의 일이었다.


낮잠을 자던 엄마가 뭐라고 중얼거리길래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꽤 정확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말을 하듯이 잠꼬대를 했다.


"대답을 해라 좀 대답을."


솔직히 크게 충격받았다. 엄마는 꿈에서도 대답 없는 나와 실랑이 중이었던 것 같았다. 현실에서의 엄마는 내게 미안한 것이 많아서인지 대답하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다. 부쩍 내 눈치를 많이 보던 엄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꿈에서조차 입을 닫아버린 딸을 마주하고 있었을까. 그런 딸에게 절절하게 던진 한 마디의 잠꼬대가 슬프고 애잔했다.


엄마와 대화를 시작하면 답답했다. 젊었을 때부터 일관성 있게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는 엄마가 싫었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엄마가 살아가는 사회가 다른 느낌이었다. 엄마는 어떤 문제든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팬데믹을 겪으면서부터는 사실상 내가 가장 역할을 했고 나의 예민함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엄마는 당장에 먹을 반찬 생각뿐인 듯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쉬어가며 일하는 딸을 위해 매일 반찬을 뭘로 할지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짜증만 솟구쳤다. 하필이면 그런 때에 들은 엄마의 잠꼬대는 여러모로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입을 닫은 게 아니라 마음을 닫았던 거구나. 상처를 받아내는 사람은 오롯이 엄마였네.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나 정말 못돼 먹은 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나름의 노력 중이다. 하지만 내 노력이 부족한 건지 요즘은 종종 할머니께 내 뒷담을 하는 엄마의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엄마의 엄마가, 당신의 딸과 그 딸을 위해 기꺼이 스파이가 되어 주시는 상황이 재미있어서 웃고 말지만 머리와 가슴으로는 되새긴다. 못난 딸이지 말자고. 자주 깜빡하더라도 그만큼 더 자주 노력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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