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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피 Oct 17. 2024

출근 전에 스타벅스 가는 바리스타

우리 카페 오픈 시간은 8시. 혼자 사장도 하고 직원도 하고 마 다 하는 나는 보통 7시 반쯤 매장에 와서 문을 열고 7시 40분쯤에는 커피 세팅을 끝내놓고 이것저것 준비하며 장사를 시작한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고 그만큼 빨리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커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커피 일을 오랫동안 하고 있는 나는 주로 오피스가 많은 상권의 매장관리를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재 운영 중인 내 가게 역시 오피스가 많은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 상권의 특성 때문인지 단 몇 분 거리에 항상 스타벅스가 있었다.


나도 출근길에 남의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주변에서 나보다 일찍 문을 여는 카페라고는 스타벅스뿐이라 자연스럽게 스타벅스로 향한다. 출근 전에 아무리 일찍 가봤자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는 길어야 25분, 그 시간조차 없을 때는 테이크아웃을 한다.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우리 매장까지는 신호대기 시간을 포함해서 5분인데 나는 그 찰나동안 남들처럼 출근길 커피의 기쁨을 맛보려고 부러 돈과 시간을 써서 스타벅스를 찾는다. 내 가게로 와서 내가 세팅한 원두로 내린 그날의 첫 커피를 마시는 매일이 좋지만 한 번씩 남의 커피가 첫 커피가 되는 날은 재미도 있다. 나로서는 그런 소소한 행복을 위한 실천이랄까.


사실 바리스타들은 보편적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원두의 맛이 배전 정도 탓인지 탄맛과 쓴맛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강해서 나는 보통 부드럽고 적당히 달달한 바닐라크림콜드브루를 주문한다. 시즌 메뉴가 나와서 다른 걸 마셔볼까 고민하며 메뉴를 열심히 봐도 나한테는 그 이름도 긴 커피 한잔이 답이다. 피곤한 아침의 카페인과 당은 에너지 드링크 역할을 해준다.


"주드 고객님. 주문하신 바닐라크림콜드브루 나왔습니다."

나의 닉네임은 주드. '주드 로'의 주드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의 이름으로 불리는 아침의 부름은 이리도 경쾌하다.


나도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인데, 나보다 일찍 준비를 하고 내게 커피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의 아침을 보며 되려 생각한다. 감사한 일이라고.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아니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서 고마움은 더 깊게 와닿는다. 그래서 인사도 우렁차게 하는데 뒤질세라 우렁차게 받아주는 바리스타의 얼굴을 한번 더 돌아보며 나오게 된다.


체감 피로도가 가장 높은 목요일. 오늘 아침에도 남의 커피를 마시고 오픈 시간인 8시 전에 문을 열어놓았더니 옆 건물에 근무하시는 손님이 오셔서 아이스커피를 두 잔 주문하시며 "우리 건물에도 카페가 두 개나 있고 근방에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그렇게 많은데 매번 시간 지켜서 일찍 열고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네요. 고마워요." 하고 가신다.


바리스타는 그 한 마디로 천금을 얻은 기분이 든다. 이른 아침 피로하지만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내는 힘은 스타벅스에도, 내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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