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엄마가 멋지게만 보였다. 자신을 잘 꾸미고 남들 신경 하나 쓰지 않는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엄마는 어린 나보다도 패션과 스타일에 민감했다. 가끔 약속 때문에 시내에 나갈 때나 수학여행을 갈 때 엄마 옷을 입고 가도 친구들이 내 옷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난 엄마의 멋이 지속될 줄만 알았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속옷 하나에도 신경 써서 그렇게나 멋을 부리고 다니던 엄마는 앞자리가 바뀔수록 그러니까 나이 들수록 그 민감함에 둔해져 갔다. 돌아보면 엄마도 40대 중반까지는 꽤나 스타일을 신경 썼던 것 같은데.
난 엄마가 어디 가서도 아줌마 소릴 듣지 않는 환경에 익숙했다. 내가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도 아가씨 소릴 듣던 사람이다. 자그마한 엄마에 비해 덩치도 키도 큰 나를 보며 "에? 딸이에요? 동생 아니고?" 하는 소리를 서른마흔다섯 번도 더 들었기에 그런 인사치레가 익숙했다. 하지만 엄마가 나이 들수록 그 대사는 "에? 딸이에요? 조카 아니고?"로 바뀌면서 점점 "딸이 엄마를 많이 닮았네."라는 대사로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엄마의 나이 듦을 타인의 인사말로 체감했다.
50대가 된 엄마는 그제야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아줌마의 모습에 도달했다. 예쁜 걸 떠나서 편한 옷을 우선으로 찾고 깔을 맞춘다거나 하던 예전의 민감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디자인보다 세탁의 편리성을 본다. 집에 키우던 강아지에 이어 고양이까지 몇 마리를 입양하고 나서부턴 고양이 털이 묻어도 최대한 티 나지 않는 색이나 재질로 기준이 맞춰졌다. 젊을 적 엄마의 기준이 오로지 엄마였다면 지금 엄마의 기준은 엄마에게 없다. 매일매일 보며 그 사실을 느슨하게 깨달은 나는 언젠가부터 현실에 애달퍼졌다.
내 가게로 마실 나오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예전에 내가 보던 엄마와 많이 다름을 느끼면서 엄마의 옛날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자꾸 비교하여 떠올렸다. 나는 이제 엄마가 젊음에 대한 혹은 멋에 대한 욕심을 버린 걸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다. 많이들 듣는 말 있지 않나.
엄마도 여자다. 우리 엄마에게서도 그 말을 찾은 날이 있다.
최근이었다.
하루는 외출하고 들어온 엄마가 속이 너무 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냉장고에 술이 있었으면 술을 꺼내 마셨을 거라고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엄마가 제일 늙어 보인다는 사실이 엄마를 화나고 속상하게 했다는 이야기. 다들 보톡스 맞고 시술받고 그렇게 피부와 주름을 가꾸면서 늙지 않을 수는 없지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한다고 했다. 나는 거기다 대고 평소 하듯 엄마에게 "그 이모들은 다 자기 능력으로 그렇게 했겠지. 엄마는 그럴 능력 안 되잖아." 하는 팩트로 초를 칠 수 없었다. 나도 거울 속에서 주름 하나를 발견하면 슬프고 새치 하나를 발견하면 이제 다 됐다며 호들갑을 떠는데. 늙는다는 것이 그렇게 우울한 일인데 엄마는 어떻겠어. 인정.
그 말을 듣고 며칠 후 주변에 평이 좋은 병원엘 다녀왔다. 엄마 혼자 보내는 것이 못 미더워 가게 문을 잠시 닫아놓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우연이라는 건 신기하게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지. 상담 팀장을 마주 보는데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몇 달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던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나와 엄마에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엄마가 받고 싶어 하는 부분을 다 해서 일반 비용보다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랄 맞은 상사가 아니었기에 몇 년 만에 만나는 전 직장동료에게 이런 도움도 받는구나.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나에게는 그런 교훈을, 엄마에게는 주름 개선 효과를 남긴 에피소드였다. 엄마에게 오랫동안 좋은 옷을 사주지 못했는데 하고 싶다는 시술을 받게 해 줘야지 하고 큰마음먹고 카드를 꺼내 몇 십만 원이 되는 비용 처리를 하고 나는 3천 원짜리 커피를 팔러 다시 가게로 돌아갔다.
엄마는 이제 내가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그 상담팀장에게 편하게 연락하여 예약을 하기도 한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나는 또 한 번 생각했다. 엄마도 여자다. 망각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