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 말하지 말기
일상을 살아가는데 순간 순간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학계에 남고 싶은 내가 하나 더 내야할 용기는 모르는 걸 물어볼 때, 모른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몰라, 하지만 이 부분은 이렇게 생각해' 라거나 '이거 잘 모르겠어. 가르쳐줄래? 도와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상황들에 익숙해져야 했다. 회사 생활과는 또 다른 점이다.
정부 부처로 파견을 1년동안 간 적이 있었는데, 부서에서 높으신 분이 내게 자주 했던 말은 "말 끝마다 ~ 인것 같습니다. 하지마. 그냥 확실하게 ~ 이다. ~했다. 로 끝내." 였다. 지나고 보니 세상 만사 100% 진실인 것이 어디 있겠냐 싶은데 (게다가 보고된 내용이 여러 부처를 거쳐서, 여러 사람의 입에서 나온 내용이니 틀릴 수도 있지 않은가) 버릇처럼 입에 붙어서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 트레이닝?을 받고, 파견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우리 조직은 '~인 것 같다.' 를 수도 없이 쓰고 있었다. 심지어 팀장님까지. 안도감이 들면서 오히려 이게 정상인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보고된 내용이 맞다는 건지, 틀리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겠지만 나는 차라리 확실하지 않은 사실이나 의견을 개진할 경우 잘 모르겠다는 의미를 담은 저 말이 더 솔직한 것 같고 편안하다. 물론 그렇다고 불성실하게 일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박사 1년차에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어, 나 그 내용 알아. 필요하면 도와줄수 있어'였다. 통계 프로그램도 못하고, 전공이 이전과 달라 딱히 배경 지식도 없고, 수업은 듣는데 혼자서는 해결 못할 숙제만 쌓여가는 상황에서 시간을 바꿔 수업을 듣는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전전긍긍 했다. '나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어! 도와줘!' 이 한마디가 뱉기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과 스킬을 너무나 갖고 싶었다.
세미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이 질문을 하면 알아 듣고 내 답변을 준비하는데, 먼저 치고 나가는 애들이 의견을 내면 갑자기 주제가 산으로 간다. 컴퓨터엔 항상 한쪽에는 줌을 켜고, 한 쪽에는 메모장을 열어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디스커션 따라가느라 중간에 멈춘 커서만 껌뻑-껌뻑- 남은 채로 수업이 끝난다. 결국 한 마디도 못하고 시간이 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모니터를 보고 옅은 미소만 한시간 반 내내 짓는 내가 불쌍한지 궁금한지 교수님이 어쩌다 나에게 먼저 기회를 주면 갑자기 질문이 안들린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니 답변도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다가 결국 잘 모르는 게 들통난다. 그 생활을 거의 1년 했다. 모르는게 생기면 모르는 채로 아는 척 지나가는 게 아니라 철판을 깔고 '잘 모른다. 이해가 안가니 다시 설명 해달라'고 했다면, 아쉬움이 생겼다.
그럼에도 모른다고 말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던 건 교수님들 덕분이었다. 교수님들은 수시로 잘 모르겠다는 얘기를 한다. 분야가 달라서, 질문을 모르겠어서, 주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내용이 확실하지 않아서 등 이유는 많다. 열심히 수업 하시다가 학생이 질문을 하면 대부분 답을 해주시지만, 어떤 경우엔 '진짜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누구한테 한번 물어보고 다시 말해줄게'라거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몰라서 할말이 없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한 두명이 아니라 내가 수업을 들었던 거의 모든 교수님이 모른다고 말한다. 어쩌면 본인이 무엇을 정확하게 아는지 혹은 모르는지, 무엇에 정통한지 아닌지를 잘 구별할 수 있어서 더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것 같다!! 또 쓴다.) 그리고 오늘 랩미팅에서 포닥이 '와, 나 진짜 그 부분은 모르겠어. 완전 노아이디어야' 하는걸 보고 갑자기 또 용기가 생겼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단, 모르는 걸 알아가는게 더 좋은거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까 하루하루 모름을 알아가는 재미를 찾아봐야지. 당장 이 글을 쓰고 논문을 읽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