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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채권⑮채권 구입이 미국과 세계를 구합니다 1

4. 제2차 세계대전 - 장병들의 총에 직접 총알을 넣어 주세요

by 한정엽

이번 전쟁에도 돈이 문제였다.


전쟁 예산의 수립과 두 가지 해결 방법


예상하지 못한 전쟁 참여로 막대한 예산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했다.


일본군의 공습 전 진주만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두 가지 방식을 시행했다. 세금 인상과 전쟁 채권의 판매였다.


가장 먼저 세수를 늘리기 위해 1913년에 개정된 소득세를 흔들어 깨웠다.


이후 개인 소득세 세율이 인상되기 시작하더니 최고 세율이 자그마치 94%까지나 올라갔다.


면세 기준도 대폭 하향시켜 1,700만 명 이상이 세금을 내게 되었다. 이 효과로 소득세로 들어온 세금이 법인세 금액을 넘어섰다.


원천징수 제도도 처음 시행되어 세금을 먼저 걷고 정산을 나중에 진행하게 되어 현금흐름도 개선시켰다.


그래도 큰 불만 없이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는데,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잘 따라가는 미국인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전쟁 채권 구매를 장려하는 포스터 <출처 : 위키피디아>


전쟁 채권의 판매 방식 도입


두 번째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전쟁 채권 판매를 꺼내 들었다.


이번 전쟁 채권 이름은 ‘시리즈 E채권(Series E bond)’이라 불렸다.


뉴딜 정책 초기에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방안으로 저축채권을 만들어 팔았던 경험이 있어 이를 연계하여 이름 지었다.



시리즈 E 채권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1935년 처음 도입된 저축채권은 헨리 모겐소(Henry Morgenthau Jr.) 재무부 장관의 주도하에 영문명을 붙인 시리즈로 만들어 팔았다.


이름이 '시리즈 A채권'으로 차음 불렸다. 이후 시리즈 B, C, D까지 판매를 했다.


정부 이름이 붙어 있어 원금 보장은 물론 매입도 쉬웠다. 안전 투자로 인식되어 판매 호조를 보여 많이 팔렸다.


이러한 영향으로 전쟁 채권의 판매도 좋은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의 어떤 나라들보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헨리 모겐소 재무부 장관 <출처 : 위키피디아>


적극적인 참여와 성공적인 판매량


이는 개인의 참여는 물론 기업과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했기에 가능했다. 전쟁 채권의 최소 수익률은 4% 였고 반기마다 복리로 계산되었다.


25달러의 만기 채권은 18.75달러에 구입해 10년 뒤에 25달러로 교환이 되는 구조였다.


지급되는 이자는 연방정부 세금만 부여되었고 주정부와 지방세는 면제되는 특혜도 있었다.


전쟁 채권의 판매를 위해 제1 세계대전의 경험을 토대로 선전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는 한편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진행했다.



전쟁 채권 매입을 홍보하는 사진 벽화 <출처 : 위키피디아>


체계적인 홍보와 새로운 마케팅 시행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배우부터 전쟁터에서 전공을 세운 영웅들까지 전쟁 채권을 팔기 위해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했다.


인지도와 유명세가 높은 사람들은 적극 동참했고, 이들을 활용한 다양한 홍보 방식은 일상생활 전반에 파고들었다.



시카고 공립학교의 채권 구입 발표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TV가 없던 시대의 대표적 문화생활인 영화의 상영이 끝날 때는 마지막 장면에 채권 매입을 독려하는 홍보 문구가 올라갔다. 음반이나 악보의 표지 앞부분에도 구매를 유도하는 문구를 넣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전쟁 채권에 대한 내용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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