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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엽 Dec 14. 2021

1931년 대공황의 영향

1929년 미국의 대공황 10

은행이 파산하는 것은 경제적인 흐름 속에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경쟁력이 있는 곳은 더욱더 규모가 커지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월스트리트의 대폭락 당시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외부 요인에 따른 은행의 파산


하지만 은행의 자체적인 문제가 아닌, 외부 환경의 변화로 위기가 닥친다면? 그것도 하나의 은행이 아닌 전국 규모 단위의 위기가 닥친다면?


이러한 것은 문제의 발생 원인을 찾아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전부 다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도의 미국 상황이 이러했다.


증시의 폭락과 공황으로 외국 자본도 큰 손실을 입게 되자 자신들이 투자한 자본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달러를 모아 금으로 태환 한 뒤, 자국으로 가져가 버린 것이다.



폭락한 미국 산업 생산 지수(1929~1932) <출처 : 위키피디아>



이제는 금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벌어졌다.


더욱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따라 자국의 상품이 미국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자 각 국가는 미국에 대한 보복 관세를 연달아 부여했다.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 확대에 무너지는 국제 공조


결국 미국의 상품도 외국에서 비싸게 팔리는 현상이 벌어지자 전 세계적인 교역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되면서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 체제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런 외부 환경의 변화는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명분을 갖게 해 주었는데, 이런 위기의식 속에 국제적인 무역 공조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의 금 인증서 <출처 : 위키피디아>



더구나 영국이 경제 위축을 버티다 못해 1931년 9월 금본위제에서 탈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경제적 압박은 더 커졌다.


영국의 금본위제 탈퇴에 따른 영향


영국은 자국의 파운드가 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바로 통화량을 늘리기 시작했고 금리를 낮추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경기 부양에 나선 것이다.


이런 영국의 뒤를 따라 한 달 만에 18개 국가가 뒤를 이어 금본위제를 탈퇴했다.


결국 파운드는 30% 가까이 폭락하면서 기축통화로서의 위치를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영국의 파운드 <출처 : 위키피디아>



하지만 미국은 이를 지켜볼 뿐, 굳건하게 금본위제를 고수했다.


이는 미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한계점을 보여 주었다.


미국의 무리한 금본위제 사수와 금리 인상


주가의 하락과 물건 가격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현상에는 돈을 공급해 유동성을 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달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금본위제 사수’라는 대명제 아래 달러를 금으로 태환 해 가는 나라들을 설득하면서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래야 미국 내 금을 보호하고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뉴욕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은행의 파산 <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1931년 10월 1.5퍼센트의 금리를 단기간에 3.5퍼센트까지 올리는 초강수를 진행했다.


가뜩이나 금융 불안이 실물 경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이는 결정적인 치명타가 되었다.


불황을 생각하지 않고, 금을 사수하겠다는 목표만이 보였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줄어든 통화량이 더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되자, 버티다 못한 은행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유동성 부족에 따른 디플레이션(물건 가격 하락)의 확대


은행들은 부족한 유동성을 확보하고자 대출을 줄이는 동시에 자금 회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 개인과 회사의 파산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물건 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소비를 줄여 나갔다.



무료 급식소로 몰려드는 사람들 <출처 : 위키피디아>



줄어드는 소득과 파산의 위협 속에 속속 사람들은 은행의 예금을 찾아 일상 생활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돈이 떨어지자 담보로 잡힌 집이 은행에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경제 불황의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다음 달인 1931년 10월에만 미국 내 파산한 은행이 500여 개가 넘었다. 이어 연말까지 총 2,300여 개의 은행이 문을 닫았다.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늘어나는 실업자


은행의 파산은 통화량이 더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했고 기업의 산업 생산력을 더 하락시켰다.




대공황 당시 치솟은 실업률 <출처 : 위키피디아>



바로 연결된 실업률이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하면서 거리에 먹을 것을 찾으러 헤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1931년은 금융위기가 본격적인 경제 공황으로 자리를 넘겨준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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