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발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철도(railroad) 산업의 발전 과정이다. 이 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철도를 통한 운송(Rail transport)이었다.
미국의 철도 산업
철로 위에 수레를 올리고, 이를 인력이나 동물의 힘으로 이동을 한 것은 오래전부터 사용된 방식이었다. 특히 광산 채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이를 철도와 접목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고, 1825년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 1781~1848)에 의해 철도 운송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초기 철도 운송차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에서는 1828년 볼티모어와 오하이오 간의 철도 부설 작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철도 건설이 시작되었다. 1830년 전국에 3.3㎞이었던 거리가 1840년에는 4,509㎞, 1850년에는 1만 4,434㎞로 늘어났다.
철도 운송의 증가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산업 형태를 만들어 냈다.
철로 주변의 마을과 역 주변에는 새로운 상권이 생겨났고, 물류비가 절감되면서 상품 가격이 내려갔다. 가격이 저렴해진 만큼 사고파는 시장의 크기가 커졌고, 공급하는 산업 규모도 확장되고 전문화되었다.
아울러 철도는 자본 집약적 산업으로, 한두 사람의 노력과 돈으로 진행할 수 있는 규모를 벗어났다. 대규모 자본이 필요했다. 철도와 연계된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건설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철도회사의 채권이 발행되고, 이를 유통하기 위해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식과 채권 거래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울러 막대한 양의 건설 물자가 필요했다. 건설 초기에는 기술력과 인프라의 부족으로 영국에서 수입하여 충당했으나, 차츰 미국 내 회사들이 조달을 시작하면서 규모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1865년 샌프란시스코의 태평양 철도 채권 <출처 : 위키피디아>
철도 산업을 통해 미국의 자본 시장과 산업 시장이 동시에 발전하였다. 당시 철도 산업이 절정으로 다다른 사건은 대륙횡단철도의 개통이었다.
1869년 대륙횡단철도(Transcontinental railroad) 개통
미국 영토는 태평양과 대서양에 닿을 정도로 넓고 광활한 지역이다. 사실상 2개의 대양을 연결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이 발전된 동부 지역에 비해 서부 지역은 황무지나 다름없었고, 골드러시가 진행되기 전까지 개척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철도를 통해 개척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운송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병력의 이동, 우편물 수송 등 철도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자, 의회는 남북전쟁 중에도 태평양 철도법(Pacific Railroad Acts)을 통과시켰다.
대륙횡단철도에 관한 법안은 1862년 5월에 하원을, 6월에 상원을 통과해서 7월 1일 링컨 대통령(Abraham Lincoln, 1809~1865)이 서명하였다. (이후 이 법안은 1863~65년 사이 몇 차례 개정되었다)
링컨 대통령(Abraham Lincoln) <출처 : 위키피디아>
공사는 1863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6년 뒤인 1869년 5월 유타주 프로먼터리 포인트에서 만나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따랐다. 당시의 토목기술은 대부분 사람의 힘에 의존해야 했다.
시작과 끝은 캘리포니아주의 새크라멘토에서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까지였다. 총 길이는 2,826㎞(1,756마일)에 달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연방정부의 과감한 당근 정책이 제시되었다. 이 사업의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철도 양쪽 32km 폭의 땅을 건설회사에 무상으로 매각했고 철도 1.6km당 수만 달러의 돈을 빌려주는, 그야말로 파격적 조건을 제시했다.
이러한 철도사업의 대상자로 유니언 퍼시픽 철도(Union Pacific Railroad)와 센트럴 퍼시픽 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 두 회사가 선정됐다.
동에서 서를 잇는 대규모 공사는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과 난관에 봉착했다. 사고로 인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우직한 뚝심과 무서운 노력으로 결국 이루어 냈다.
이 공사의 완성으로 관련 회사들이 돈방석에앉게 되자 수익성 높은 철도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이후 연결 노선이 추가적으로 건설되었다.
1869년 5월 10일 유타주에서의 만남 <출처 : 위키피디아>
철도 운송의 경제적 효과
초기 대륙횡단 열차는 목재를 원료로 사용하였다. 이후 석탄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대형 기관차가 출현하였고 이는 더욱더 많은 사람과 화물을 운송하게 되었다. 철도는 기존의 마차를 대신하여 지역 간 운송 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대규모 운송은 물류비를 절감시켰고, 이를 통한 유통산업과 경제의 발전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더구나 여행이 편리해지면서 인적 교류도 활발해졌다.
서부로 사람이 몰리면서 서부개척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당시 마차로 한 달 정도 가야 했던 거리를 단 6일 만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여객 운송 및 물류비용도 과거보다 10%밖에 되지 않았다.
1900년대 철도 노선 지도 <출처 : 위키피디아>
실질적으로 철도를 통해 동과 서를 연결해 나간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연방정부가 미국 전체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원동력이 됐다.
이후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4배 이상 커지게 되고, 경제 규모가 유럽을 압도할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세계 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