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몇 가지 정했던 원칙이 있다. 아주 간략하고 명확하기에 딱 세 가지만 정하고 실천하려고 애썼다.
하나는 A4 기본 10포인트로 한 페이지 정도 쓰자. 최소한 그 한 장에 내 이야기를 담자. 처음에 내가 쓴 원고였던, <산골짜기 면서기 보호구역>이라는 비매품 책을 쓸 때. 홍철기 글쓰기 멘토님의 강력한 조언이었다.
“너무 길어요. 좀 줄입시다.”
그 영향인지. 브런치에 한 꼭지의 글에는 한 페이지 반의 분량은 잘 넘기지 않는다. 확실히 길게 쓰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내 실력으로는 독자에게 전달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 페이지는 성의라고 생각하고 썼다. 어디까지나 난 수필 지망생이지, 시인은 아니니까.
둘째는 정치적 발언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러한 이해 충돌이 다분한 글은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것도 문제겠지만, 정치적 표현은 국민이 다 하는 투표 참여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최대한 솔직하게 쓰겠다는 다짐이다. 내 이야기를 다루는 수필 작가들은 항상 고민한다. 과연 어디까지 나를 내보여야 할까? 여기서 더 드러내면 좀 위험해 보이는데, 자체 검열을 하게 되는 고비가 꼭 오게 된다. 다만 나도 솔직하게 쓰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만한 글은 퇴고로 여러 번 썼다가 지웠다.
예를 들면 나의 가난한 이야기나, 내가 우울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나, 나의 휴직 이야기나, 더불어서 시시콜콜한 여행 이야기까지. 간혹 유입 검색어로 ‘이춘노 휴직’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무슨 의도인지 궁금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지금까지 글을 올렸다.
그런데 무슨 책 소개하면서 이런 사설이 길까?
아마도 책 저자가 손석희라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 짧은 글에 이름 석 자 넣었다고, 댓글로 비난 아닌 공격을 받았다. 댓글을 닫을까 하는 고민을 할 만큼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공무원의 철밥통 비난보다 더 충격이 컸던 것은 그 자체가 젊은 시절 나의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마흔이 되어서 세상의 정의와 원칙이 무엇이 옳은 것인지. 혼동이 심한 시기였다. 그러다 세상 뉴스와 단절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유튜브에서 올라오는 알고리즘에 그의 앵커 브리핑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앵커 브리핑을 여러 번 돌려보고서 책을 골랐고, 읽었다.
내용은 2019년 4월 4일쯤에 방송된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였다.
긴 내용이지만 중요한 부분만 잠시 인용하겠다.
“뉴스룸의 앵커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중략….)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라는 JTBC의 앵커 브리핑을 듣고, 정치라는 것과 그의 잘못과 손석희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잠시 잊었다.
여기서 나는 글쟁이 이춘노라는 사람의 초심을 생각했다. 그 유명한 정치인과 언론인도 처음에는 초심이 있었을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지켜야 했던 것이고,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초심을 지키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쓰는 글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돌아보고 있는지? 고민과 또 다른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그리고 살짝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에 남는 혹은 책으로 남는 나의 말들이 이후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글 한 문장마다 깊은 고민을 갖고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의 글은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보는 것임을 알았다면, 발행 버튼을 누를 때, 한 번 더 퇴고를 해야 한다. 아무리 쉽게 쓴 글이라고 해도, 글은 내 자신이다. 언젠가는 그 글이 나에게 다시금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의 간략한 초심을 최대한 지키고자 노력을 다짐했다. 거기다 더한 욕심이 생겼다. 타인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작가가 되길 바라는 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