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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다면

<비밀의 숲> 황시목처럼 살 수 있을까?

by 이춘노

역사 드라마도 아니고,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대본집도 구매해서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평소에 배우 조승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감정이 무딘 주인공의 드라마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나도 감정이 없었으면 했다.


검사라 그럴까? 오직 이성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검사가 멋지다.


드라마에서 황시목은 유능한 검사이다. 아마도 감정을 잃었다고 해도 검사는 자신의 감정이 없어도 멋지게 보이겠지? 물론 어느 조직이든 감정이 없는 사람은 소외당하겠지만, 드라마 속 황시목 닮고 싶다. 하지만 나는 유능하지도 않은 어느 시골 면사무소 직원일 뿐이니까. 그저 동경할 뿐이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까.


나도 사실은 감정이 무디긴 하다. 아니 세상 속에서 연기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나를 평가하기를 참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느 순간 할 말은 하는 조금 꼰대 같은 스타일. 옆에 있는 것만으로 참 재미없게 살 것만 같은 모습에서 사람과의 교류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도 나의 주변에 그나마 사람이 있는 것은 연기라고 할 만큼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싫지만, 먼저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또 세상 우울한 사람이지만, 그럴 때면 더 차분하게 친절하게 민원인에게 이야기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지금 내가 돈을 벌고 지금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드라마 속 황시목은 내가 동경하는 삶 자체였다.


현실 속에서 황시목으로는 살 수 없다. 왜?


사실 황시목이 드라마상 주인공이고, 타협 없는 본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난 그 이유를 강원철이라는 인물에서 답을 찾았다. 황시목의 상관으로 현실과 타협하는 면에서는 기성세대와 다를 것이 없지만, 뒤에서 담임 선생님처럼 주인공을 도와준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 있을 법한. 하지만 쉽지 않은 담임 선생님 같은 선배가 있기에 황시목 그도 감정이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 주변에는 담임 선생님 같은 선배가 있을까?


8년을 일하면서 느낀 것은 강원철과 같은 선배는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나도 최근에야 모시는 계장님을 통해서 그러한 감정을 느끼긴 했다. 선배로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직장 상사나 동료가 과연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지. 오히려 만나기 힘들기에 감정을 포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사실은 황시목이 아니라 강원철이 정말 되기 어려운 사람이 아닐까?


감정을 버릴 수 있다면, 편할 것 같다. 그러면 스트레스도 없을 것이고, 애써 연기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정말 나에게도 주변에 필요한 사람은 강원철은 아닐지. 잠시 고민해보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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