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 채만 있어도 꼭 알아야 하는 상속 증여 절세 45>를 읽고
배움의 끝은 어디쯤 있을까?
아마 누구나 최고의 순간은 기억할 것이다. 금메달을 따거나 어떠한 시험에 합격한 순간 등. 그런데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너무나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다시는 그 수험서는 쳐다보지도 않을 만큼 노력했다면 말이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시절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
2010년 어느 여름 주말 늦은 밤. 집에도 못 가고 진도 빼기에 바쁜 강사와 ‘월화수목금금금’을 실천하는 공시생들은 열심히 수업 중이었다. 과목은 민법. 아마 조문 중에서 제일 뒤편에 있는 친족상속법을 공부하고 있었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에게서 민법은 기본 주식이다. 일종의 쌀과 같다. 밥상에 밥이 없으면, 그건 주인공 없는 무대. 즉 가장 기본인 법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에 질려서 포기하는 두께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오후까지 머리가 터질 거 같던 수강생들이 눈이 번쩍인다. 그것도 손과 머리가 따로 놀고 있지만, 스스로 뭔가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마법 같은 조문은 이러했다.
민법 제1009조(법정상속분)
⓵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그 상속분은 균분으로 한다.
⓶피상속인의 배우자의 상속분은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비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존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솔직히 법 내용은 상식이지만, 과거에는 지금의 상식이 통하지 않기에 법도 달랐다. 장자(長子)가 더 받는 시대, 여성이라고 상속 순위에서 멀어지는 법이 있었던 과거 통념에서 이러한 자녀 모두 균등 상속이라는 개념은 이른바 던져주는 문제로 나오기도 했다.
아마 다들 열심히 집중하는 것은 나중에 본인들이 상속분을 계산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외아들이고, 집도 가난하기에 상속에 대한 개념을 아예 어린 시절부터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차라리 나와는 상관없지만, 판례가 더 재미있는 이혼 편이 더 좋았다. 그래도 법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그냥 그 조문 하나는 시험 문제 말고는 나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잊고 있던 법을 다시금 떠올리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면사무소 민원 업무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작은 면이라서 주민등록이나 각종 민원 발급 서류 및 세무 업무도 같이 보고 있었다. 그러면 가끔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민원인이 계신다. 특히나 세금 중에서도 국세에 관련이나 상속 같은 서류 등. 아마도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나 세무서에 제출하는 서류 중에 주민등록 등·초본이나 제적등본이 필요한 일도 있고, 보통은 지방세 관련 서류가 동시에 필요하기도 하기에 자동으로 묻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면사무소에서 보는 세무는 그야말로 지방세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자동차세나 취득세, 면허세, 주민세, 토지세 등 보통 면사무소 직원들이 모르겠다고 하는 세금은 국세이다. 그건 세무서에서 신고하고 문의할 내용이다.
그래도 작은 면사무소에서는 출생신고보다 사망신고가 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절대다수다. 내가 일했던 업무를 보던 1년 동안 주민등록 출생신고는 딱 1번이었지만, 사망신고 처리는 매주 있었다.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모두 모인 자녀와 남은 배우자분이 각종 서류를 수십 장 발급하기 위해서 오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물으셨다. 상속과 이전 관련은 어떻게 하냐고. 물론 자세한 사항은 법무사나 세무사를 통한 상담을 권해드렸다.
하지만 그분들을 이해는 되는 것도 보통 행정복지센터에서 거의 모든 서류가 발급되기에 물어보시는 것은 당연하다. 또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안내를 하다보니 더 그렇지만, 다만 문제는 내가 세금 관련은 답변을 못 한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면, 나도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섣부른 조언은 오히려 혼란을 주기 그 때문에 민원인에게도 민폐라는 점을 양해 말씀을 드렸다.
그래도 무력한 지식에 집어 들었던 상속 관련 책이다. 역시나 적은 기억으로 법을 알고 있고, 약간의 경험이 있어도 실무 책은 무리긴 했다. 부족한 정보에서 전문가도 상담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지식은 두루 겸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했다.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알고 있어야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뭐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돌아보면 내가 가진 직업은 사회복지 공무원이기 때문에 심리나 상담에 큰 비중으로 책을 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그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다. 공무원들이 신청 서류를 접하는 가운데, 상담은 극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주장하는 불확실한 정보와 진실. 그리고 수치로 존재하는 금융이나 일반 재산 정보가 뒤섞인 상황에서 현실과 감성은 오로지 지침과 법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겠다. 담당자의 재량권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온정주의에 접근한 선배들은 상급 기관 감사에서 집중 표적이 된다. 그리고 후에 벌어질 사회적 책임에도 무거운 질책도 감당해야 한다. 또 민원인들의 수준도 각종 정보 접근 수단으로 전문가 뺨치는 허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그에 반해서 우리의 정책은 정치적이고 즉흥적이며, 항상 변한다. 거기에 뉴스로 먼저 터진 정책을 부랴부랴 공부해야 한다는 점은 반성하고 또 유념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직은 부족한 사회복지의 초년 업무 담당자로 난 기본으로 삼는 마음이 있었다. 일단 상대를 본다. 눈을 보고 개인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고자 노력했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의 초점은 개인의 마음이고, 주변 가족이고, 생활 수준과 수중의 돈이다. 그러한 점에서는 오히려 개인적으로 합격하지 못했지만, 법을 배운 과거 수험생활이 나에게 도움이 되긴 했다.
한부모 가정과 상담을 하면서 이혼의 진행 과정을 알기에 짧은 시간 질문으로 민원인의 상처를 덜 줄 수 있었고, 법률 용어를 알기에 어려운 지침을 설명하기 쉬웠다. 그리고 상속법을 조금은 알았기에 부채를 상속받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충고해 줄 수 있었다. 혹은 어려움을 호소하며 두툼한 소송 서류를 나에게 보이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소송 과정을 아는 나에게 있어서 그 서류가 단순한 분풀이라는 것을 알지만, 모른 척 그분에게 필요한 적당한 혜택을 연결해 주기도 했다.
물론 그분들은 단순한 사회복지사가 뭘 알겠냐는 식으로 이것저것 마음껏 이야기하면 될 것으로 알았겠지만, 의외로 복지 공무원들은 다양한 출신으로 들어온 저마다 내공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마치 본인들이 불리한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들의 말을 일단 경청하기 위해서 알면서도 묵묵히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르실 테지.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부족하지 않는지. 항상 고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항상 있다. 너무나 야속한 민원인에게 서운하지 않을 순 없다. 그래도 단순히 과거에는 내가 상속받을 일이 없기에 무시했던 조문이 다시금 궁금해진 것도 내 안에서 존재하는 편협한 생각을 깨기 위한 반성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이해는 다 못 했지만, 자기만족을 스스로 하면서 덮었을지언정. 무겁게 책장을 넘겼다.
처음 시험 면접관이 물었던 어떠한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고 싶냐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 조금이나마 현장에서 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이 불변의 이치라는 점은 맞고 또 잊어서도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