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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멜 팝콘의 비극

외로움에 먹던 팝콘이 나를 90kg으로 만들었다

by 이춘노

‘어! 싱글 콤보가 있네?!’


코로나 시국으로 찾지 못했던 극장에서 처음 보는 메뉴를 보고서 반가움에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물론 나이가 마흔이나 된 아재가 좋은 티를 내면 좀 모양 빠지니까. 표정에 미동이 없이 진지하게 주문했다. 그리고 선택 사항은 역시나 카라멜 팝콘과 콜라였다.


2014년쯤. 내가 고향에서 근무하며 제일 힘들었던 것이 바로 도시에 대한 갈망이었다. 시골이고 서울이고 뭐가 다르겠냐고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겪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마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내려오신 대부분 사람은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요즘에는 흔한 대형 트럭이나 버스에 눈이 붙어 있는 귀요미 버스들이 그때 유행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도 본 기억이 났고, 뉴스에서도 버스를 타겠다고 칭얼거리는 아이 때문에 어머니들이 고생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런데 시골에도 그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거기에는 전 좌석이 경로석처럼 어르신들만 계셨다.

노량진과 사당. 혹은 광화문이나 목동을 돌아다니던 백수가 기껏 고향에 왔더니 인구 밀도는 적은데, 아는 얼굴은 많아서 인사하는 밀도가 높아지니, 편한 마음이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무조건 전주로 올라갔다.


하지만, 막상 전주에 가면 뭐하겠나. 술도 안 먹고, 여행도 안 가고, 여자 친구도 없고, 차도 없으니. 할 것이라고 하면 역시 영화 관람 뿐이었다. 일단 장르 불문 모든 영화를 봤다. 어느 때는 애니메이션 영화도 초딩들이랑 본 기억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영화가 아니었다. 그놈의 팝콘이 문제였다. 혼자 와서 팝콘을 먹는데, 밍밍한 기본 맛은 싫었다. 역시나 알알이 진한 코팅이 된 카라멜 팝콘이 끌렸고, 콜라는 기본이다. 게다가 500원이면 사이즈 업이 되는데, 하지 않는 것이 손해 같아서 악착같이 카라멜 팝콘과 콜라를 다 먹었다. 그래서 조조를 보는 어느 날에는 영화표 값보다 팝콘과 콜라 값이 더 많이 나오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서 77kg에 입사를 했던 내 몸이 여러 가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5년 후에는 90kg을 찍었다. 물론 100% 팝콘의 책임은 아닐지라도, 그 달달한 팝콘의 영향이 상당하게 있다는 주변의 평가는 맞는 것 같다.


그럼 왜 그렇게 팝콘을 먹었을까? 술은 줄여서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는데, 팝콘은 배고픔이 아닌 습관처럼 고르고 먹었다. 그러다 지금 와서 팝콘을 먹으며 생각해보니, 마음이 허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른바 더블 콤보에 대한 반발로 악착같이 먹었던 것은 아닐지? 한 손에는 차가운 콜라와 다른 한 손에는 팝콘을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순간. 묘한 포만감이 생긴 것 같다. 저 연인들에게 지지 않는 나만의 연인 팝콘.

‘아마 당시에 싱글 콤보가 있었다면, 그리 살이 찌지는 않았을 것을.’


역시나 지난 후에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다. 허나 지금이라도 싱글 콤보로 만족하는 마흔이 된 것으로도 많은 발전이다. 나이를 먹으니 성찰한 걸까? 내심 뿌듯하게 팝콘 먹방을 혼자 찍고 만족스럽게 영화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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