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포도를 먹지 않는다. 과일은 까먹기 편한 바나나와 귤 정도를 제외하고는 솔직히 손도 대지 않는 편인 귀차니즘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밀가루 음식. 특히나 수제비에 진심인 성격을 봤을 때,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도 포도는 일하면서 항상 한 상자 정도는 구매하거나 친구를 통해서 받은 기억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포도가 제법 유명하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두고 무심한 듯 맛이나 보라며 얻은 한 송이 포도를 받아 들고,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내가 알던 보라색 포도보다 더 맛이 좋다는 샤인 머스캣. 받고는 일단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잊고 살았다.
그리고 바쁜 일정에 명절이 시작되는 새벽에서야 먹고 있다. 너무 달다. 하지만 그 과한 달달함이 이 포도의 매력 같았다. 그렇게 잘 먹지 않던 포도를 한 송이 다 먹고는 원룸에 창문을 열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새벽을 맞이한다.
예상은 했지만, 복직과 함께 명절이 다가왔고, 무시무시하다는 태풍도 이곳은 무사히 넘어갔다. 어른이 되고서는 정말 명절이 싫었는데, 복지 업무를 하면서는 여러 가지로 두렵기까지 한 명절 전 근무가 마무리되고 이제 휴식이다.
고향에 살기에 멀리 있는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귀경할 일은 없다. 좀 떨어진 부모님 집에 가서 아침 식사 먹고 오면 될 일이다. 그리고 지인들의 명절 선물은 안 받고 안 주는 추세지만, 소소한 것까지는 어쩌지 못해서 가격이 싼 것으로 성의 표시만 했다. 무심한 듯 건넨 것이지만, 어디 마음마저 대충이겠는가. 그렇게 나의 명절의 큰 이벤트라면 친구와의 술 한 잔 빼고는 조촐하다.
사회복지직의 명절은 바쁘다. 누군가 누구에게 무언가를 나누기 좋은 시기이다. 연초가 그렇고, 설날이 그렇고, 추석이 그렇고, 연말이 그렇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시기가 나누기 좋은데, 유독 그때는 사람들이 힘을 모은다. 평소에도 마음을 나누면 참 좋겠지만, 몰리는 귀성객들처럼 여기저기서 마음을 나눈다. 감사한 일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행동하는 마음에 거짓보다는 진실이 많음을 난 믿고 싶다.
그런데 나는 8년 가까운 복지 업무를 하면서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다.
‘과연 명절은 어떤 의미인가’이다. 사실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가 추석이다. 오히려 설날보다는 추석에 사람들이 고향에 더 많이 오고, 이웃 돕기도 더 높은 기부가 들어온다. 수확이라는 넉넉한 마음에서 오는 여유라고 하기에는 유독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그럴까? 농촌에는 쌀 또는 라면과 식료품이 제법 들어온다. 그것을 기부받고 각종 서류 작업을 하고, 배달까지 하는 전 과정은 고생스럽지만 뭔가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어려운 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무조건 돈이다. 그러나 돈보다는 물품이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다. 최대한 그분들에게 맞는 물건을 드리고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포도를 먹다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품을 받은 그분들도 혹시나 이런 마음일까? 포도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포도를 먹는 내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닐지. 아무리 좋은 샤인 머스캣이라도 잘 먹지 않을 수 있는데. 어려운 분들에게 추석은 어떤 의미일까?
나도 외롭게 산다면 외로운 마흔 노총각이다. 직업으로는 공무원이라고 하지만, 어릴 때나 최근까지도 가난했고, 지금도 원룸에서 사는 형편에 명절은 조금 싫다. 챙길 것도 많은 입장이니까. 부담되고, 계절도 좀 쓸쓸하다.
마냥 좋은 마음은 아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또 경험도 해봤으니까. 조금은 풍성하지 않은 어느 가정에 명절이라는 것은 오히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모두가 무심하게 아무 일 없이 명절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무던하게 조용히 넘으면 다행이다는 생각을 조금 이른 새벽에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