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 그닥 관심 없는 삶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많은 먹거리 사진을 찍어 올렸다. 그래서 간혹 나의 모습을 식탐이 많은 뚠뚠이로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단순히 내가 먹었던 것을 기록하는 습관에 충실한 편이기 때문에 글을 많이 올라오는 것뿐이다.
오히려 이슬(?)만 먹고 산다는 말이 어울리는 편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솔직히 먹는 것에 진심인 것은 내가 삼은 목표이기도 하다. 차라리 아픈 몸을 챙기기 위해서, 잘 먹고 다니자는 생각에 먹거리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먹고 있지만, 스치듯이 잊고 살기에 모르는 다른 사람처럼 나도 그냥 평범한 식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장어를 먹을 일이 있었다. 그런 음식이 있지 않는가? 내 돈 주고는 사 먹기 어렵지만, 먹자니 부담스러운 그런 메뉴. 몸보신의 대명사인 장어를 먹을 기회도 적지만, 혼자 먹기는 더 어려운 그런 음식. 모처럼 그렇게 접하기 어려운 메뉴에 집게를 들었다.
통통하게 손질된 장어를 불판에 올리고, 잘 구워질 때까지 유심히 관찰했다. '겉빠속촉' 치킨에만 해당하지 않는 굽기 메뉴에 정석인 단어다. 나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람보다는 불판에 집중했다.
역시 좋은 메뉴에는 이슬이 빠지면 안 되겠지? 그래서 마시지 않으려는 소주도 좀 마셨다. 평상시에 내 행동을 보는 사람이라면 헛갈리는 성향이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럿이 있을 때는 또 말이 많다. 이것도 그때마다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지만, 글로 고백한다. 난 타인과의 식사가 꽤 불편하다. 정말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식사 자체는 거절하고 본다.
물론 좋아하는 음식은 있다. 이를테면 수제비나 라면 같은 것은 즐겨 먹지만, 편한 사람이 아니면 밥을 먹지 않는 편이 난 좋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바쁘면 밥을 거르는 일이 좀 많은 편이다. 우울증이 생기면서 생긴 버릇이기도 하지만, 유독 장트러블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집중을 위해서는 한 두 끼 식사는 거르고, 일이나 해야 할 것에 오롯이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오해를 받는다.
'저 사람은 왜 저렇지?'
사실 이것도 무난하게 바꾸고 싶은 내 모습이기도 하지만, 식사를 하는 행위 자체도 귀찮다. 단편적인 모습만 본다면 이상한 행동이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루에 두 시간을 못 자는 생활을 꽤 오래 해오던 사람이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몸은 아프지만, 저 일은 꼭 해야 한다. 그리고 밥을 먹는 시간이 참 일이 잘된다. 게다가 밥을 먹으면 이 상황에서 장트러블이 발생한다면?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아서 넘기지만, 그런 순간마다 걱정을 받는 건 좀 곤란하긴 하다. 아무리 내가 관종이라도 아픈 사람으로 관심은 나도 불편하니까. 혼자 있는 것이 좋아해도, 회식이나 타인과의 식사에서는 연기를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본성이 나오는 걸 감추기 힘들다.
어제는 두유 한 박스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전에 내 휴직으로 고생했던 직원분이 날 위해서 보내주신 선물이었다. 밥 안 먹고 출근하면서 점심도 거르는 내 행동을 보고, 걱정돼서 챙겨주신 엄마 같은 마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말보다 그 두유에 마음이 찡했다. 내가 정신 못 차리고 하지 못했던 일을 야근하며 해주셨을 그분에게 오히려 걱정을 받는 모습도 죄송했지만, 그래도 내 몸도 챙기면서 복직 후에는 맡은 업무는 꼭 해내자는 마음으로 버틴 하루하루에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나의 복직은 그러한 미안함과 각오로 시작한 도전과 같았다. 애초에 두 번의 휴직으로 그만두려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를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은 매일같이 반성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억울한 일이 참 많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집안 문제도 그랬고,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그랬다. 살면서 생기는 모든 불행에 탓하기 바빴던 하루가 쌓여서 지금의 자신이 존재했다. 그런데 끝까지 인정하기 싫은 것은 한 가지 있다. 그건 내 탓이다. 내가 잘 못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닌지? 그 생각은 생각의 제일 마지막에 검토를 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부모님을 탓하면서도 내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지 않았던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몸이 약한 것을 원망하면서도 내가 건강해지려는 건 게을리했다. 일이 힘들다고 했지만, 내가 업무 숙달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헤어진 연인을 탓했지만, 난 그녀에게 좋은 남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휴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제일 미안했던 사람에게 그런 두유를 받자마자 하나 먹기 시작했다. 뭐 금방 좋아지지 않겠지만, 일단 시작은 두유로 시작해야겠지.
참! 이런 약한 모습에 득을 본 것이 하나 있었다. 아까 말했던 장어구이에서 장어 꼬리를 양보받았다. 혼잣말로 '먹어봐야 쓸 곳도 없는데.'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려면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장어 꼬리보다는 난 잔치국수가 더 맛난 거 같지만, 몸에 좋다니 꿀꺽 삼켰다. 더 튼튼한 내일의 나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