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4

축하의 의미

by 이춘노

한창 일하다가 우연히 뒤편에 있는 화분을 보았다. 출근하고 일주일이 되어서야 직전 부서에서 보내준 화분인 것을 알고, 쑥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입구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옮겨 두었다.


입사하면서 옮긴 자리 나 승진 때를 생각해보니, 대충 열 개 정도의 화분을 받은 것 같다. 그래도 8년을 근무하면서 그 정도 축하를 공식적으로 받은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는 그 감사함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생각할수록 잘 모르겠다. 단순히 누군가 있던 분이 타 부서를 가는 것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화분을 받은 것이 두 번 정도 있었다. 정말 뜻밖에 인연이 챙겨준 것이라서 기억이 또렷하고 마음에 빚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간단한 성의 표시도 아직 하지 못했다.

가끔 보면 우리는 의례적인 표현 이외에는 개인적 표현에 서툴다. 사실 인사철에 돌아다니는 저런 화분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잠시 서무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함께 있던 직원이 받을 화분의 스타일과 문구에 신경을 쓰는 것도 그러하다. 그리고 받으면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받지 못하면 나중에 서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잠깐이라도 조직에 몸을 담는 것은 시간과 공간과 일을 나누었던 동료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연이라는 공감이 생긴 것에서 환송회는 좀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일상적인 정기 인사에도 그러한데, 나를 위해서 일부러 하지 않아도 될 화분을 보내준 고마운 분들을 잊고 살았다. 아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주변에 모든 것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입버릇처럼 인생은 연기라고 말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복직을 위해서 언제쯤 인사가 날지도 걱정이었지만, 또 서류를 가지고 시청을 가봐야 하는 순간은 출근보다 더 겁이 났다. 생각이 많은 사람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친 척하고, 문을 들어선다. 그리고 인사를 해야 할 곳에 쑥스럽게 인사를 한다. 요즘은 신세대들이 어른들에게 인사를 안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사람은 결국 같다. 얼굴을 인식하지 않는 상대는 또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남이다. 물론 아는 사람이라고 관대할 것도 아닌 세상이지만, 남에게는 그러한 기회조차 없다는 것도 진리다. 그렇기에 아쉬운 사람은 꼭 상대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야 한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것이 마음 아픈 사람이다. 꼭 굳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99가지 생각해봐도, 1가지 이유로 결국은 모든 것이 필요 없어진다.

이유는 결국 내가 잊힌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나의 축하의 범위에서 남이 되어버리는 것은 어찌 보면 불편하게 사는 것에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태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니까.

그래서 가끔은 이런 연기 같은 일상 속에서도 드문드문 감사함이 올라오긴 한다. 화분에 리본에 쓰여 있는 문구를 서랍에 곱게 모셔두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의 인사 발령을 보고 화분을 주문해야 했을 서무나 회계 담당자가 애썼겠구나. 감사함에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시기가 너무 늦었다. 그리고 보니 내 승진에 화분을 보내주신 직원분은 승진하셨는데, 답례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사람은 축하도 힘들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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