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로 10
‘나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아마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한 질문이었다. 아마도 A4로 몇백 장은 써왔을 나의 질문에 답들은 여러 가지를 이유를 말했지만, 결론적으로든 하나로 귀결되었다. 내가 불안해하기에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었다.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이것저것 하루를 준비했다. 아마도 이미 전날 써둔 일정을 따라가는 것이고, 확인하는 버릇 같은 일상이었다. 기상과 취침 사이에 일정에서 어쩐지 빈틈이 많아 보이면 하루가 허전했다. 메모의 습관도 이런 강박적 사고에 한몫했지만, 사람이 다 다르듯이 사는 방법에서 불안의 이유도 달랐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에 하루의 목표로 삼고 살아왔다. 아마도 그게 이유였을 것이다. 내가 참 불안했던 이유가 말이다.
잠시 말했지만, 사람은 불안의 이유를 참 다르게 나타낸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가스 밸브를 잠그지 않아서 불안하기도 하며, 신고 나온 구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불안한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이 닿고 간 물건에 불안해하는 예도 있었다. 이런 사소한 불안은 딱히 문제가 없다. 참으면 되던지 잠시만 잊고 살면 되니까. 해결도 가능하다. 다시 돌아가서 잠그거나 갈아신거나 소독하면 된다.
불안이 병이 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러한 경험을 해본 사람만 아는 것이 생각해보면 월요병이라면 비슷한 감정일까? 그러한 월요병이 아침마다 수십 배의 고통으로 가슴을 짓누른다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닌 상황이 되어버린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상담도 해봤고, 휴직도 해봤다. 그리고 약도 먹어봤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힘들긴 항상 같다.
내가 대충 살 수 없었던 어쩌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한 내 불안은 꼼꼼하게 적어 놓은 일거리에서 내 몸을 맡기는 순간 사라졌다. 휴직까지 했으니, 일손도 놓아본 경험이 있었고, 메모도 안 해봤던 시절에는 건성도 살아봤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 여러 심리 관련 서적에서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듣기 좋은 말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쓰면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갖겠는가. 내가 단언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조금 다듬거나 진정시키는 것일 뿐이다. 아니면 그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인데, 사회생활하면서 그러기는 로또 정도 맞아야 가능한 이야기다.
결국, 약물에 의지하면서 나는 하지 못하는 일은 잠시 멀리 접어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하루를 설계하고 몸을 맡겼다. 그게 지금의 현재이다. 도망이라고 해도 좋고, 여러 핑계를 담았지만, 남들이 보기에도 열심히 사는 내가 불안한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대강대강 살 수 없다는 것. 할 수 있는 그것을 못 하니, 엄청 분했던 것 같다. 그게 내가 마음이 상처받은 그리고 약까지 먹어야 했던 진짜 이유였다. 억울했지만, 그것조차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