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얼굴은 잘 못 외우지만

섬진로 8

by 이춘노

나는 머리가 나쁜가 보다.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학교 다닐 적에는 그럭저럭 이름표가 있어서 별로 문제가 없었다. 가족은 모를 수 없거니와 학교에서는 친구 아니면 선배, 후배 그것 이외는 선생님이었다. 모두 기억하기 쉬운 별명이 주된 호칭이었으니, 까다로울 것도 없었다.


문제는 역시나 군대에서 시작되었다. 선임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이름과 기수도 외워야 하는 첫 자대 배치에서 적잖게 맞으며 외웠던 악몽이 있었다. 아마 그렇게 공부를 했다면 대학이 바뀌었을지 몰랐다. 하여튼 그 이후로 내가 심각한 외우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에서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짝 모른 척하면, 들키지 않는다. 대충은 눈치란 게 있으니 문제 될 것도 없고, 전자 문서에서 이름이 다 쓰여 있으니 클릭하는 것이 있다. 문제는 역시나 얼굴이다.

어찌 보면 기억력이 나쁜 것은 아니다. 과거의 추억을 소소한 그것까지 꺼내서 글을 쓰는 작업을 술술 해내는 상황은 정말 바보가 아닌 것이 입증되었으나,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것은 상대에게 큰 실례이다. 어찌 보면 서운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애써 모른 척해도 결국은 들킨다. 노력은 제법 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서야 간신히 익히고 나면 자리가 바뀐다. 그것이 큰 걸림돌이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이겨내고 있다.


일단 최대한 기억에 끝을 잡아내서 공통점을 찾는다. 그러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접점이 보이고, 기억이 난다. 그렇게 대충은 해결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상대는 나를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른다고 하기엔 말을 꺼내기 참 부끄럽다. 게다가 난 주로 사람과 상담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난 밝은 어투로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아까의 방법으로 차분하게 나를 숨기고 말했는데, 대부분은 적중했지만 결혼한 상대가 내가 기억해낸 사람과 영 다른 사람이었다. 결국은 살짝 실수하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웃어넘겼다.


솔직히 천성이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나에게 있어서 주변은 책과 빈 공간뿐이었다. 단체 생활에서 함께 숙식해온 사람은 대부분 군대에서 만난 인연들이었다. 그 정도로 땀 흘리며 격한 젊음을 공유한 상대도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외의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도 오늘도 연기했다. 그래야 대강 살 수 있으니까.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일종의 연기였다. 그러한 짧거나 혹은 긴 호흡의 연기를 해야 그런대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이 어울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게 싫어서 뛰쳐나간 상황이 몇 번인가? 답답한 마음에 휴직했지만, 돌아온 자리에는 다시금 얼굴을 익혀야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살짝 걱정도 된다. 아니 두렵다.

그래서 어색하지만, 밝은 모습으로 난 상대에게 인사했다. 적어도 그런 상대에게 사람은 차갑지 않다. 내가 차가운 모습으로 상대를 대하는 순간. 그 사람은 내 눈을 보고, 자신을 어찌 바라보는지 대충은 짐작한다. 어느 정도의 사회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의 촉은 있다. 난 그러기에 인사한다. 아주 밝게 그리고 친절하게 말이다. 나는 그렇게 얼굴과 이름은 못 외우지만, 밝은 인사가 하루 하루를 나를 살릴 무기가 값싼 무기가 있다는 점에서 오늘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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