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교과서 밖 인물연구소』를 읽고
아침부터 아래한글 빈 화면에 보도자료를 작성했다. 혹시나 작년에 써둔 것이 있었다면, 고정된 틀에 내용만 살짝 고쳐서 순식간에 썼을 것을 십 분을 제목만 쓰다 말았다. 이른바 오늘은 글짓기의 하루였다. 곧 있을 행사에 한 장의 기사문을 작성하는 것도 버거운 나는 작가 지망생이다.
어렵게 제목을 뽑아내고, 내용을 채웠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면, 그 단어를 행사의 주제에 맞게 한 장 정도의 보도자료로 작성했다. 빈 백지에 써둔 글이 분명 내가 새로 쓴 글임에도 역시나 보도자료는 보도자료답다. 아마도 내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마구 휘갈긴 글이라면 통과를 못 했겠지? 틀에 어긋난 보도자료라서 말이다.
문뜩 최근에 읽은 최준영 박사의 책이 떠올랐다. 나는 <지구본 연구소>라는 채널을 즐겨 듣는데, 그분이 책을 냈다는 소식에 초판을 바로 주문했다. 『최준영의 교과서 밖 인물연구소』라는 책의 첫 인물을 접하면서 뭔가 교과서에서 보던 인물의 평가는 달랐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을 행정가로 표현한 어색했지만, 책을 읽다 보니 묘한 반전미가 있는 쾌감이 있었다. 아마도 내 기억 속의 나이팅게일은 어느 틀에 고정된 인물. 혹은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여러 인물을 다시금 접하면서 내가 알던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교과서 밖에서는 이렇게 살았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나 자신을 생각해도 그렇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내가 실제로 행동하는 모습, 아니면 남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혹은 포장되어서 남들이 그렇게 말해서 행동하는 내 모습까지. 다양한 ‘이춘노’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교과서에 나온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질까?
상상해 봤다. 존경스럽거나 남들이 본받아야 할 무언가를 가진 사람으로 기록되는 것이 유리할 것 같다. 애써 인간다운 불필요한 행적들은 빼거나 포장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잘 찍은 사진 한 장의 모습으로 기억되겠지. 다만, 그렇게 기름기 쏙 뺀 내 모습은 몇 줄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보도자료처럼.
사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재다능한 사람이고, 남들에게 존경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었다. 기왕이면 도덕적인 흠결도 없어서 타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런데 난 그렇지 못하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살면서 그리 대단한 일은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것을 느끼고 알아가는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그조차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무척 아팠던 것 같다. 내가 교과서에 올라갈 정도의 깜냥이 아닌 것이 억울해서 말이다. 그리고 노력했던 내 젊음이 너무 헛헛해서 말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행사의 보도자료는 어렵게 썼지만, 내 인생의 이야기는 이렇게 훌훌 써서 보여줄 장소가 있다는 점. 교과서에 이름이 나올 일은 없겠지만, 난 무척 행복하다.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쓸 수 있음에 또 오늘도 감사하게 화면에 글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