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을 남에게 소개 가능할까?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을 읽고

by 이춘노

공간과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유현준 작가의 책은 전부 읽고 있다. 역시나 이번 서울행에서 고른 책도 작가의 신간이었다. 주제는 전 세계 가볼 건축 명소였다. 존재하나, 나갈 일이 없어서 깨끗한 상태로 서랍 속에 존재하는 여권을 쓰게 되면 몇 곳은 방문하고 싶었다.

다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다른 점은 가 사는 공간이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도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가족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구인이라면 비슷할 것인데, 유독 집에 민감하다. 작가도 지적했지만, 우리는 편의성보다는 환가성에 더 중점을 둔 재산적 가치로 공간을 보기 때문 같다. 그래서 특이한 건축물. 특히나 단독주택은 건축비에 비해서 팔기는 참 손해가 심하다. 이른바 아파트로 통칭되는 규격화된 공간으로 지폐처럼 지역과 편의성으로 가격이 정해진다.


내가 사는 곳은 원룸이다. 딱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모습이다. 단지 투룸이나 원룸이냐가 다르지만, 정말 원룸이라서 구조를 상상하기 쉽다. 건물명이 있는 것 말고는 전국 원룸촌은 모양도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내 공간을 굳이 남에게 소개할 필요성이 없다. 좁은 것은 둘째고, 신기할 것 없는 내 공간이다.

직전에 살던 곳은 지리산 산내면에 펜션 구조의 방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나름 초대할 맛이 있는 구조였다. 방도 넓고, 친구를 초대해서 술 한 잔 마시고는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아마도 내가 마흔이 넘도록 내 공간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덜 부끄러웠던 곳이 지리산에 살았던 무렵 같다.


노량진 반지하 고시원에서 살던 때나 증조할아버지가 소나무로 지었다는 오래된 시골집에서 자란 나는 타인에게 내 집을 보여주기 참 싫었다. 건물도 허름하고, 생활하기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과거에 순간보다는 그래도 지금의 혼자 누워서 하루를 마무리할 쉼터가 있음에 감사하지만, 나 이외의 타인이 있기에는 아직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살면서 내 공간을 꾸밀 수 있다면, 난 서점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집의 디자인을 유명 건축가에게 맡겨서 집을 지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 공간만큼은 이렇게 꾸미고 싶다.


나의 공간에서는 티브이가 없다. 벽과 빈틈은 책과 필기구를 놓고, 글을 쓸 수 있는 적당한 책상과 편안한 의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탁자에는 누군가 와서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서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햇살이 좋은 날에는 그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

장식이라면 귀여운 것들로 드문드문 배치하고 말이다. 렇게 만들어둔 나의 공간이 있다면, 조금은 자신이 있게 사람도 초대하면서 삶의 여유를 느낄 것 같다.


결국 보는 눈도 자신의 마음과 공간에서 나온다. 허름하고 누추한 곳이라도 꿈을 꾼다면, 미래라도 기대하겠지. 다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공간만큼의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고, 마감한다. 어느 수급자 가구를 갔을 때. 그들의 마음이 공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상담을 미리 파악하고 진행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자신의 공간에 무엇이 있고, 또 신경 쓰는 것이 바로 내 옆에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렇기에 내가 공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마음이 나약해질 때. 그리고 몸이 아플 때는 내 주위를 둘러본다. 그다음에는 방을 치우기 시작한다. 끙끙거리며 방정리를 하고 나면, 다시 눕고 내일을 준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나의 공간에는 누군가 초대될 것이다.
살아서는 손님이고, 죽어서는 경찰일지 모른다.


그래서 원한다.


타인을 초대할 만큼의 공간과 그것을 꾸밀 수 있는 생활과 공간만큼 넓은 마음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