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어디까지 해봤니?

운노 히로시의 『다이어트의 역사』를 읽고

by 이춘노

“오늘부터 다이어트 시작이다!”


매년 초나, 매월 초에는 꼭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다. 그렇게 결심하고 신청한 헬스장 이용권은 결국 세 번 가고 끝나버렸다는 고백을 치킨 다리를 들고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익숙한 우리 일상의 다이어트 생활에 뜬금없는 역사란 관점이 흥미로워서 책을 읽어 보았다.


솔직히 나는 어디까지 살을 빼야 다이어트에 성공인지는 기준이 모호했다. 그리고 누가 다이어트를 조장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책을 읽어보니 결국은 세상의 변화가 범인이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아는 다이어트는 근대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서양의 공통된 인식인 것 같다. 특히나 세계 1차 대전의 시작과 서구화된 문화의 전파가 활발한 1920년부터 지금까지 저자가 설명하는 다이어트가 변천사는 계량화된 세상과 여성의 사회진출. 그리고 상업적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사라는 관점과 현실적 다이어트는 좀 다른것 같다. 다이어트가 절대적으로 확고한 문화가 된 시점에서는 아무리 상술적인 문화의 부추김이라도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 아닐지. 그것이 싫다고 다이어트를 안 할 사람은 또 없지 않은가?


나도 이런 다이어트에 동참한 1인 중 하나이다. 2019년의 건강 검진에서는 내 몸무게가 90kg에 가까웠다. 당시에 사진을 보면 터질 듯한 볼살과 셔츠 단추가 내 건강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2021년에는 77kg이 되었다. 최소한 12kg은 감량한 내 몸무게에 검진을 하던 직원도 수치를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사이즈가 셔츠는 좀 헐렁해졌고, 과거에 입던 정장도 다시금 햇빛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감도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다이어트의 관점을 성별로 따진 다는 것도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다이어트에는 이제 남녀가 없다. 볼록 나온 내가 인격이라고 좋게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난 과거에 못 먹던 시절에 통통한 것이 부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적정한 체중이 특히나 보기 좋은 체형이 자신을 보여주는 세상이 돼버린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이토록 다이어트에 열광하는 것 아닐까?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을 뺐어요?"


나이 마흔을 앞두고 남자가 살을 빼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면 중독자인 내가 라면이나 수제비를 안 먹고살 순 없으니까. 그럴 때마다 난 말했다.


"걸었어요."


"엥?"


단순히 걸었다고 하면 믿지 않지만, 난 실제로 걸었다. 물론 10km를 걸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 걸었던 것은 아니지만, 잡다한 생각을 버리기에 걸었던 그 기간 동안 신기하게 난 살이 빠졌다.


나는 그래서 주변에 이렇게 말했다.


"스트레스를 버리는 것도 다이어트다."


현대 사회에서 풍족한 식사 때문에만 살이 찐 걸까? 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먹는 만큼은 일하고, 아프게 일한다. 그런데도 살이 찌는 것은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즐겁게 사는데, 살이 찐 거라면 그건 복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행복하지 않은데, 살이 찐다는 것은 그건 그 사람이 우울하고,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의 다이어트는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90kg에서 77kg이 되었다. 사실 사람은 건강측면에서 적정 체중이란 것이 있다. 그것이 극도로 늘어나는 것도 또한 줄어드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다.


오늘 몸무게가 살짝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살이 찌는 것은 요즘 내가 스트레스가 늘어났다는 반증이기에 곱씹어서 털어 내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오해하지 말자. 살이 쪄서 게으른 것이 아니라, 스트레스가 많은데 그것을 스스로 해소 못해서 자기 관리가 부족함이 게으르기에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이라고. 난 그렇게 이 책을 읽고 첨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