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고
독서광도 편독을 즐긴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주제에 손이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고, 막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주제를 다양하게 독서를 즐기려는 편이다. 그러다 우연하게 유튜브에서 강의를 하는 김상욱 교수의 신간을 접하고, 바로 책 주문을 질렀다. 같이 주문한 책에는 수학과 영어 관련 책도 포함되었다. 물론 사무실에 도착한 책을 보고 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혹시 기억나는가? 우리가 학창 시절에 외우던 원소 기호이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순수하게 기호와 도식만 그러진 책이라면, 주저 없이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야간 비상근무를 마치고, 오지 않은 잠을 청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주제임에도 내일 출근을 앞두고도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책 제목에서 오는 인문학적 감성 때문일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문과생이 보기에도 책 제목은 참 잘 지었다. 그리고 이과생이 바라보는 세상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과학적 수식도 문맥상 이해하고 넘길 수 있었다. 아마도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흔히 사람들이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오해하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습득하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진정한 독서광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다. 수 백 페이지의 내용에서 내가 기억하는 것을 메모를 하고 가 밑줄을 치면서도 금방 잊어버린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그토록 외웠던 주기율표가 지금은 처음 보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원소에서 시작한 작가의 설명은 <우주의 신비> 다큐를 쭉 이어가듯이 인간과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끝을 맺는다. 솔직히 난 이과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했다. 중간중간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죽음과 사랑의 담론에서 이 또한 문학적 표현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죽음'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오류가 누적되고 고장이 잦아지다가 생화학 기계가 작동을 멈춘다는 표현은 어찌 보면 삭막한 정의 같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 않던가? 그리고 사랑에 대한 표현도 나름 신선했다. 덕분에 책을 마무리하면서 다시금 그와 관련된 책을 주문한 것을 보면, 이과생의 문과적 해석은 제대로 통했다 본다.
혹시나 다음에 내가 이 책과 함께 고른(순전히 이 작가의 강의를 듣고 주문한 책이다.) 내용을 리뷰할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학문은 찬찬히 보면 다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릴 때는 몰랐던 그 귀찮던 것을 마흔이 넘어서 다시금 펼쳐보는 이유는 역시나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겸손함 때문은 아닐지.
오늘도 비가 내린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만에 폭우란다.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바람이 부는 날에 쓰러질 나무를 걱정하고, 별조차도 볼 시간이 없는 우리 인간이, 너무 딱딱한 삶으로 무뎌진 감성으로 바라본 과학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가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