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양푼그릇에 주문한 비빔국수가 나왔다. 김가루에 깨, 콩나물과 김치, 비빔 양념 등. 그리고 제일 중요한 시간이 맞춰 잘 익은 찰진 국수. 비빔밥도 그런 느낌이지만, 뭔가 대충 막 넣은 것 같은 국수 그릇을 쓱쓱 비벼 놓으니, 보기는 좀 지저분해도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군침이 돈다.
아마 한 여름에 묵직한 음식으로 허전한 체력을 채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입맛 없는 가운데 시원하고 목 넘김이 편한 메뉴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간편식을 선호한다. 물론 만드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먹는 사람이 어떻게 먹느냐인데, 뜨거운 음식보다는 차게 먹고 싶다. 그리고 음미하는 맛보다는 게걸스럽게 흡입하고는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책을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확실히 그런 점에서는 여름에 국수만 한 것도 없다. 밀가루도 귀한 과거에 어떻게 이런 국수가 서민 음식으로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시원한 열무국수도 좋다. 아니면 에어컨만 좀 시원하다면 잔치국수도 순식간에 한 그릇 비워버릴 수 있으나, 난 새콤하고 좀 얼얼한 뒷맛이 있는 비빔국수가 더 좋다.
그렇게 찾은 <부송국수>에서 단골답게 익숙한 주문을 했다. 이번에는 만두도 같이 하나 주문했다. 이곳은 도자기도 만드는 부업을 하시는 것 같아서 나오는 그릇도 세련되면서 질감이 좋다. 한입에 먹기 좋은 만두를 일렬로 세워서 놓으면, 아깝지만 먹는 사람은 충전 잔량을 체크하듯이 그 수를 가늠할 수도 있다.
주 메뉴인 국수가 조금 늦게 나와서 허기가 있다면, 김치나 단무지, 얼얼한 고추도 먹는 것을 추천한다. 보통은 잔치국수에 함께 먹으면 조합이 좋고, 일단 비빔국수는 먹기 시작하면은 약간 단맛이 있는 만두의 씹는 맛만 필요할 테니까.
오히려 추가로 달라고 할 것은 막걸리 한 잔 생각나게 하는 그릇에 멸치 육수가 아닐지? 비빔국수를 젓가락으로 슬슬 비벼서 면 끝을 확인하고 흡입한 후에 반쯤 입 안에 남은 면과 만두를 함께 먹는다. 그리고 그릇으로 마시는 멸치 육수는 만족감 넘치는 최고의 맛이다. 이번에는 아껴 먹은 이 한 잔의 육수로 끝났지만, 고추나 김치를 그 와중에 챙겨서 먹었다면, 사장님에게 한 잔 더 부탁했을 것이다.
국물까지 싹 비우고 빈 그릇을 보고는 뿌듯하게 시계를 봤다. 아직도 뜨거운 여름 낮시간이 길게도 남았다. 좀 천천히 먹으며 줄였으면 어땠을지.
무더운 여름에 식사는 해야 할 상황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방법이 국숫집에 가서 한 그릇 후딱 먹는 것이 최고 같지만, 다음 날은 또 어떻게 해결할지? 잠시 고민이 생겼던 독거 총각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