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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Jul 28. 2024

바다향이 살아 있는 수제비

순천 <송치마을>에서 수제비를 먹다

  수제비 덕후라서 그런지. 수제비 맛집 정보는 제법 귀를 열고 듣는 편이다. 그렇게 레이더를 펼쳐 놓고도 못 본 곳이 이곳 <송치마을>이다. 아마도 장소는 구례에서 순천을 가는 국도 송치재에 있어서 그랬을까? 차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길에 있는 간판으로는 쉽게 지나칠 안에 있어서 몰랐을 것 같다. 아무리 차가 없었다지만, 십 수년 전에는 걸어서 송치재를 넘을 때도 이곳의 존재를 몰랐다.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비가 내리는 주말에 찾아갔다.


  이곳은 특징적인 것이 자차 없이는 오기 힘들다는 점과 대기하는 줄이 많기에 11시에 오픈하는 시간에 가더라도 먼저 먹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도 간신히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지만, 순번에 따라서 음식이 나오다 보니 바로 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실내에서 시원한 상태로 기다린다는 점이 다행이랄까?


  <송치마을>의 주메뉴는 항아리수제비와 돈가스이다. 꽤 유명한 곳이라서 항아리수제비는 인원수대로 주문하고 추가로 돈가스를 주문하거나 공깃밥을 시켜 먹는데 이른 시간부터 소주와 맥주가 테이블에 깔리는 것이 국물의 맛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보통은 수제비를 파는 곳에서 술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고기가 있는 곳도 아닌데, 옆자리 노부부는 이미 항아리 수제비 국물에 소주잔을 짠하고 있었다.


  '과연 어떤 맛일까?'

  그런 기대와 배고픔으로 일단 나온 돈가스와 오이무침과 김치를 먹으면서 메인 메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는 경양식 돈가스는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의미로 돈가스로 유명했다.) 소스나 고기의 맛은 있지만, 함께 먹는 맛난 고기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또 함께 나오는 오이무침도 그 양이 엄청난데, 바로 만든 느낌의 오이의 사각거림도 신선했다.

  이제 나왔다. 항아리 수제비.


  여러 수제비를 먹었지만, 이러한 담백함은 또 처음이다. 다슬기 수제비나 감자수제비와의 결이 다른 맑은 국물 깊은 담백함이 무엇 때문일지? 국자로 휘휘 저어서 내용물을 찾아보니, 바지락과 미역이 눈에 보였다. 아마도 항아리 색 때문에 맑다는 느낌이 덜해서 그렇지, 다른 하얀 그릇이었다면 밑바닥까지 보였을 국물이었다. 그렇지만 싱겁거나 서운하지 않을 깊은 시원함은 마치 바다의 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비슷하기로는 부안에서 먹었던 바지락 칼국수가 생각났지만, 맛의 근원은 바다향이라는 것 밖에 모르겠다.

  그리고 적당한 수제비의 두께도 목 넘김이 편해서 좋았고, 함께 나온 반찬들도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맛을 잡아주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내 입맛의 수제비 지도가 새롭게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남원 근처로 얼큰 해물수제비와 곡성과 순창을 아우르는 섬진강을 낀 다슬기 수제비 맛집과 얼큰하면서도 맛 좋은 곡성의 참게 수제비. 그리고 좀 더 내려가는 길에서 찾은 순천의 바지락 수제비이다. 아마도 강의 시원함과는 결이 다른 바다의 시원함이 산이 펼쳐진 내륙에서 맛볼 수 있기에 더 신기했다.


  먹다 보니 슬슬 배가 차서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이 목조라서 분위기로는 수제비를 파는 곳보다는 술을 팔았을 장소로 보였다. 재를 넘기 전에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커다란 창가에서 비가 내리고, 분위기 있게 뭔가를 마셨을 것 같지만 나는 수제비를 맛있게 먹었다.

  역시나 나가는 길에 대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운치는 문을 열자마자 후덥지근한 열기와 비 때문에 올라온 습도가 고통을 주겠지만, 맛을 찾는 사람들은 그것을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심 일찍 와서 먼저 먹어본 사람은 웃으며 나갔다.

  그들은 아마도 내 표정을 쳐다보면서 맛을 가늠해보려고 했겠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맛이 있는데 표정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네~'

  그리고 다음에는 꼭 5분 더 일찍 오겠다는 생각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를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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