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제비를 먹다가 생각했는데,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누군가는 또 실천한 것 같다. 그것도 꽤 과거에 말이다. 영등포에 갈 일이 있어서 수제비 맛집을 검색했는데, <뽕씨네 수제비>가 눈길이 갔다. 이른바 수제비 덕후라서 각 지역에 수제비는 찾아가서 먹는 1인으로 안 갈 수 없는 비주얼이었다.
영등포는 내 어린 시절에 환상의 공간이었다. 기차를 타려면 과거에는 용산이나 서울역보다는 영등포가 우선이었다. 넓은 승차홈과 주변에 백화점과 상가는 남녀노소를 떠나서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특히나 롯데백화점과 지하상가는 춘노 어린이의 눈을 너무 자극하는 것들이 많았다. 비단 먹을 것만이 아니었다. 시골에서는 못 보는 화려한 생필품도 그렇지만, 깔끔한 옷도 좀 사고 싶어서 어른들 눈치를 봤던 기억이 가득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첫 휴대폰을 영등포 지하상가에서 샀다. 당시에는 유행하던 'TTL'은 스마트폰과는 다른 추억폰이었다.
내가 찾은 <뽕씨네 수제비>는 그런 추억 같은 식당 같다. 메뉴는 단일로 인원수대로 주문하면 바로 나온다. 맵기 조절은 주문할 때 요청하면 된다지만, 일단 기본을 시켜봤다.
일단 나온 메뉴를 숟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어서 확인해 본다. 붉은 국물과 적당한 수제비. 그리고 미역. 신기하게 밑바닥에 밥이 있었다. 일종의 수제비 국밥이려나? 그리고 국물은 발효한 김치 국물이 주 재료라고 말했던 것처럼. 김치의 시원한 맛이 확 올라오는 맛이었다. 약간 신라면보다는 맵지 않으면서, 너구리 라면이 생각도 났다. 그렇지만 역시 김치 국물이 라면의 인스턴트 생각을 싹 잊게 해 줬다.
요즘은 김치 수제비를 보기 힘들다. 김치라는 재료가 비싸기도 하지만, 멸치 국수나 아니면 다슬기 수제비가 인기가 많아서 전문 수제비 식당을 가더라도 만나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술을 마시고 한 입 떠먹어보는 김치 수제비의 얼큰함은 어느 국물보다 매력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거기다 고민할 것도 없이 함께 말아서 나오는 탄소화물의 정점에 밥은 든든함까지 챙겨준다.
수제비와 밥과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식당 벽을 보니 업소가 1986년 11월에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끔 어머니가 서울 올라오셨을 때 혹시나 이곳에서 수제비를 드셨을지. 내 기억도 없는 당시를 상상해 봤다. 친정을 가기 위해서 영등포에 내려서 나를 업고 다니셨을지. 아니면 내 손을 잡고, 급하게 식사를 하셨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도 허름하지만, 몇 번은 간판을 고쳤을 수제비 식당에서 배부른 상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