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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Sep 01. 2024

또 이춘노, 다시 수제비

남원 <큰집 해물 칼국수>에서 얼큰 해물 손수제비를 먹고

  인사가 났다. 


  하반기 정기 인사가 9월 2일 자로 났기에 난 근무지가 이제 바뀐다. 가끔 '다음'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인사 정보가 뜨긴 했는데, 이번에도 내 이름이 또 어딘가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잊혔던 사람이던 내가 다시 평가가 되겠지? 정작 인사가 난 사람보다 주변 사람의 머리가 더 복잡해진 것은 그 나름대로 입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퍽 좋은 평가는 기대하기 어려운 10년 근무였다. 경험은 좀 있겠지만, 시청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파서 쉬기까지 했던 나를 두고 사람들은 뒤에서 걱정을 하겠지만, 복직하며 마음을 비웠기에 그런 건 잊고 무뎌지긴 했다. 


  아마도 문제는 나 스스로가 아닐까? 과연 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 이름이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 난 버겁다. 그리고 복잡하다.

 

  걱정과 우려 속에서 난 금요일 저녁에 툭 던져진 인사 명단에서 일단 잠을 잤다. 그리고 주말 모두 사무실에 나와서 첫날은 책상을 정리하고, 둘째 날은 그 정리한 짐을 차에 옮겼다. 또 컴퓨터 바탕화면에 파일을 마우스로 이리저리 정리했다. 또 인수인계서와 처리할 서류를 투명 폴더에 넣고는 월요일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지인을 불러서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를 함께 먹었다. 

  집과 사무실 중간에 위치해서 주말에 종종 찾았던 <큰집 해물 칼국수>에서 얼큰하게 해물 손수제비를 시켰다. 또 매운 음식에 혓바닥을 중화시킬 만두는 필수였다. 스트레스에는 매운 음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좀 맵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런데 항상 거의 매주 먹었던 메뉴이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맵다. 그리고 홍합과 조개의 맛도 더 매력적이다. 아무래도 정반대에 근무지로 다니다 보면 매주는 오기 힘든 식당이다. 그래서 더 애정을 담아서 먹었던 것 같다. 마치 내 이름 불리듯이 먹었던 음식인데, 새롭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까? 먼저 나와서 살짝 식은 만두의 기름진 맛도 그러했다. 결국 또 수제비였지만, 맛은 그래도 수제비였다. 


  사실 요즘에는 입맛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글도 쓰기 싫을 만큼 사람과 일에 냉소적이었다. 반대로 평소에 나는 웃음이 많았다. 물론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심 불안함을 숨기려고 강한 척했던 것 같다. 나를 힘들 게 하는 사람이 종종 나를 휘저어도 글의 맥을 끊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회복탄력성이 훅 떨어졌다. 그래서 일만 미친 듯이 했던 것 같다. 일하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가 인사가 났다. 

  솔직히 그냥 인사가 난다면 밀린 일을 툭 던져주고 가면 될 것을 세심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2년 동안 근무하면서 썼던 업무 노트를 박스에 담고, 원룸에 놓고는 743일의 무게를 느꼈다. 그 시간의 짐은 많은 문서를 분쇄기에 넣었고, 파일을 지우고, 서랍에 내 물건을 쓰레기 통에 넣었다. 


  '난 과연 잘하고 떠나는 것일까?'


  난 대강에 가서 대강대강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참 많은 인연과 일을 나도 모르게 먼지처럼 쌓아 두고 있었다. 또 이춘노는 다른 곳에서 이춘노답게 살려고 하겠지만, 좀처럼 자신감이 생기지 않아서 수제비를 먹고 기운을 내보련다. 그리고 이런 소개를 하겠지.


  "이춘노입니다. 봄 춘에 노는 ㄹ노라 아니라 ㄴ노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말 밤 잠들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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