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도에 태어난 나는 삼겹살을 추억하기에 붉은빛이 감도는 정육점에서 통으로 놓인 고기만 기억한다. 어쩌다 검정 봉지에 담아 오는 고기 선물에 듬성듬성 썰어서 볶아 먹었던 건 있었다. 다만 지금처럼 정갈하게 썰려서 나오는 삼겹살은 점점 두껍다고 느끼는 건 내가 대패삼겹살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싸서 그랬을지 모른다. 요즘처럼 생고기가 잘 나오는 시절은 아니었다. 꽝꽝 얼었던 고기를 대패로 밀듯 썰어 검정봉지에 담아 오던 그것. 그게 내가 아는 삼겹살이었다. 아무리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호평받았던 메뉴지만, 그래도 식당은 좀처럼 가지 못하고 집에서 냄새나는 것을 감수하고 구워 먹었던 고기. 모처럼 가을이 오는 틈에 한적한 낮에 먹어 보았다.
솔직히 나는 냉동과 생고기의 차이를 잘 모르는 먹보이다. 애초에 싼 맛에 먹었던 대패삼겹살이 회식의 단골 메뉴였던 것은 맛도 있지만, 가격이 부담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 공식이 깨진 시점에는 고기는 귀한 음식이 되어 버렸다. 생삼겹살을 3~4명이 먹을 정도면 오히려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횟집이 좋았고, 족발이나 혹은 소고기도 넘볼 수 있으니 돼지고기 몸값이 너무 오르긴 했다.
과연 물가가 올라서 그랬을까? 돼지고기 값이 유독 올랐는지는 세세하게 알지는 못하겠으나, 확실히 부담이 되어 버린 상황은 주머니 사정이 느낀다.
사실 식당을 들어가면서도 싼 가격에 한 잔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주문했지만, 과거의 홀가분한 마음은 아닌 것이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대패처럼 잘게 쪼개진 가격에 둘이서 5인분을 시켜 놓고는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확실히 두툼한 생고기보다는 빨리 구워지는 것이 소주를 마시는 잔이 평소보다 늘었다. 그리고 쌈을 싸 먹는 고기도 한 점으로는 부족해서 두 개씩 포개서 고추와 쌈장과 고추냉이도 넣어서 야무지게 와구 먹는다. 그렇게 들이켜는 차가운 소주는 순식간에 5인분을 먹어 치웠다.
물론 과거의 1인분은 아니다. 수북하게 쌓여서 나오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1인분은 소식좌들을 위한 기준일테니까. 내가 그들 몫까지 챙겨 먹으면 되니까. 추가로 넉넉하게 시켰다.
입가심으로 비빔냉면도 시켰지만, 고기의 여운이 남았다. 왜 그랬을까?
그래도 종종 금값이라고 해도 먹었던 삼겹살인데, 얼어 버린 추억을 쫙쫙 밀어 담아서 맛나게 구워 먹은 기분이 들었던 이유 말이다. 그렇게 잠들기 전에 그 이유를 알았다. 항상 생일에는 대패삼겹살이 유명했던 식당에서 조촐하게 삼겹살을 구워서 나에게 쌈을 싸주시던 어머니와 그런 나를 태우고 자전거를 몰고 가셨던 아버지. 그때의 맛이 좀 그리웠나 보다. 이제는 내가 그 아버지의 나이를 넘겼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