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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Nov 10. 2024

나 가을 타나 봐

바이브의 '가을 타나 봐'를 들으며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비이브에 가을 타나 봐.

  쇼츠에 배경음악이었는데. 분위기가 좋았나 보다. 그렇다고 현실은 퇴근 후에 어설프게 라면을 먹고는 속도 더부룩한 상황.

  대충 옷을 챙겨 입고는 밖을 나섰다. 그냥 걷기 그래서 혼자만의 미션을 줬다. 모바일 뱅킹이 안 되는 통장에서 돈을 뽑아 월급통장에 넣어두자.


  본의 아니게 살면서 남에게 돈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식사를 하다가 대표로 계산을 하고 각자의 몫을 받거나, 축의금을 대신 내주고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핸드폰 번호와 같은 평생계좌를 불러주고는 쌓인 이었다.


  2008년 11월의 어느 날이었던가? 예수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아버지 때문에 전주 한 출장소에서 만든 계좌였다. 병원에는 ATM기가 기업은행뿐이었고, 들과 나는 돈을 편하게 두려고 만들었던 계좌. 핸드폰 번호랑 같은 계좌라서 신기했는데, 지금까지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사람의 기억력은 그렇게 둔하다. 어릴 적에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내가 주로 쓰는 계좌번호 하나를 못 외우고, 급하면 이 계좌 번호를 불렀다. 그렇게 인간관계와 내 짧은 기억력이 쌓여서 돈이 모였고, 이 기회에 돈을 뽑아서 월급통장에 넣어두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나에게로 집중된 후. 좀 허전했다.

  그렇게 운동 겸 은행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멋진 야경에 눈이 갔다. 영화의 장면처럼 온통 까만 세상 속에서 그 길만 유독 빛나서 들어서고 보니 등불과 조명에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여행지의 사진 꿀 명당을 찾은 느낌?


  나도 남원에 살지만, 밤에 특히나 이런 골목을 걷기는 쉽지 않았다. 모두 다 정문을 기준으로 구경하고, 뒤편의 골목은 모르고 지나간다. 알았다면 종종 이렇게 골목을 찾아서 갔을 테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광한루 안에도 그냥 들어갈 수 있어서 밤에 남의 집 구경하듯이 슬쩍 지나치듯 보고 나왔다. 확실히 밤은 조명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수십 번은 왔을 광한루였지만, 잘 꾸며놓은 야경에 처음 온 곳처럼 신기하게 둘러보게 되었다.


  솔직히 단순하게 조명만 바꾸었을 뿐인데 말이다. 어릴 적부터 놀이터처럼 살았던 광한루가 달라 보였다. 아니면 그냥 내 기분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매년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쌀쌀한 바람에 외롭다고 말하면서 마음은 새롭게 느껴졌으니까. 오래전에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실 쯤에도 나는 가을이 너무 추웠고, 힘들었다. 잊지 말자고 다이어리에 꾹꾹 글을 담아 썼건만...


  계절이 뭐 크게 변했겠는가?

  아니면 내가 힘든 삶이 크게 달라졌던가?

허한 마음은 비슷했고, 바람은 차고, 단풍은 붉게 물들었는데 말이다.

  올해 가을도 나는 좀 춥다.

  생각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산책을 할 기회도 적어서 걱정이 살로 가버렸다. 아프고 힘들다는 내가 반복적으로 바이브의 <가을 타나 봐>를 듣다가 고양이를 만났다.

  무심한 듯 나를 응시하다가 이내 무시하고 자기 사색에 빠진 고양이는 가을을 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난 가을을 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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