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입맛이 없다. 단순히 날씨 탓이라고 하기에는 아름다운 눈이 내리고, 흐리지 않은 날에는 바람이 차다는 것 빼고는 놀러 가기 딱 좋은 시기이다. 그럼에도 난 입맛이 없었다.
일이 많아서 그렇다 하기엔 10년을 비슷한 일을 해왔다. 게다가 난 지인들이 인정하는 일중독자였다. 아침부터 저녁 그리고 주말을 반납하면서라도 맡은 일은 최선을 다했다.
또 집안이 문제라고 하기엔 지난 인생이 살기 퍽퍽한 불안의 연속이라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기에 나의 떨어지는 식욕은 내 입장에서는 별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제 공무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4개월 되어가는 후배 입장에서는 내 식사가 참 불안한 모양이다. 점심마다 김밥을 챙겨 먹이는 것도 모자라서 내가 굶고 일을 할 것 같으면, 식사를 하자면서 조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난 요즘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 중이다. 그렇게 불금의 점심도 대충 먹고 일을 하려고 했으나, 후배와 근처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었다.
내 글을 쭉 지켜봐 온 독자라면 알겠지만, 난 면을 무척 사랑한다. 다이어트에 진심이던 시절에도 라면은 먹었고, 매주 한 번은 꼬박꼬박 수제비를 사 먹었다. 그리고 칼국수는 사실 없어서 못 먹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먹지 못했던 것은 보통 이런 식사는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해서였다.
퇴근하면서 먹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더라도 잘 먹지 못했던 이유가 사람이 부족해서였다. 배달의 민족으로 주문을 하면 필수 금액을 때문에라도 막 주문을 하겠지만, 어쩐지 식당은 그게 힘들다.
닭칼국수를 2인분 주문하고는 메뉴가 나오기 전에 후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심 화가 많고, 짜증이 심하게 얼굴에 드러나던 내가 한참 후배에게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덧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말을 하다 보니 배가 고프고, 식욕이 생겼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면, 옆자리에 있던 수족관에 물고기를 보면서 혹은 나무 난로에 불멍을 하고 있었어도 좋았다. 그렇지만 난 후배와 이야기를 하면서 내 마음을 툭 던져 놓았다.
큰 그릇에 나온 칼국수에 집게로 면을 국자로 국물을 떠 담고, 한입 크게 면치기를 했다. 닭육수의 진한 맛으로 면과 국물을 연신 들이켜고는 김치와 반찬을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가 찬 상태에 후배가 말을 했다.
"그래도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아지죠?"
난 그렇게 반박하기 어려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게를 나셨다.
날씨가 흐린 하루.
난 배가 고팠나보다.
또눈이 내릴 것 같았다. 사무실로 차를 몰고 가면서 앞쪽에 지리산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보이지 않았을 산의 경치가 조금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배가 부르기 때문은 아닐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인지 모를 금요일이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