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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헤이즐럿 커피 한 잔

젊은 날의 노량진의 추억

by 이춘노

노량진역 앞에 육교가 있었던 시절이다. 당시에는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가 900원에도 마실 수 있던 때. 난 육교 중간쯤에서 전화를 받았다.


"춘노야. 아버지 입원하셨다."


깊은 한숨이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통화 중에 터져 나왔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를 만나고, 결혼을 축하하고는 없는 돈에 밥을 사주고는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가려던 참이었다. 아마도 육교 아래 차들이 날 부르는 것 같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매번 있었지만, 극적인 그때를 좀처럼 잊지를 못했다.

당장은 갈 수 없어서 야간 일을 마치면서 전주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편의점 믹스 커피가 아니라, 900원짜리 헤이즐럿 커피를 사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커피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단순하게 믹스 커피나 카누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았다. 그것에 비해서 헤이즐럿 커피는 향이 좋아서 카페 메뉴에 있다면 난 보통 그것을 주문했다.


불안.

강박.

피곤함.


내가 느낀 당신의 감정은 담배도 피우지 않던 나를 진정시킬 향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마음은 진정되었지만, 피곤함에도 버스를 타는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유일한 단점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2014년에 합격을 하고는 내가 서울을 가게 되면 꼭 잠을 청하는 노량진의 어느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지나는 길에 성당에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단골집 수제비집에서 식사를 하던 소소한 루틴이 이제는 친구를 만나는 장소와 찜질방에서 숙박을 하기 위한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바뀐 상태였다.


매년 다녀간 이곳에서 제일 크게 변한 것은 단골 수제비집이 사라진 것이었고, 다음은 육교가 사라졌고, 이제는 내가 수년을 살았던 반지하 고시원도 이름이 바뀌었다. 그래도 추억을 곱씹으면서 한 바퀴 돌다 보니, 커피 한 잔을 주문하니, 커피 가격이 참으로 착해서 서너 걸음에 한 모금씩 마셔가면서 노량진 가을을 느꼈다.


그리고 사라진 육교를 한참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나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전날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도 과거에 울컥했지만, 사실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 답을 몰라서 이렇게 때마다 노량진을 찾는지 모르겠다.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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