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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Oct 22. 2020

동화 속 영웅의 길을 가지 않는 주인공에 관하여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

사람들은 동화 속 영웅에 열광하고, 또 사랑한다. 완벽한 히어로를 동경하며 그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그 영웅은 일종의 상징이자 서사 그 자체가 된다.


마이클 조던은 그런 선수다. 완벽한 영웅의 이미지, 실력은 기본이고 실적, 외모, 스토리, 영향력, 투쟁심, 농구와 관련한 그 어떤 카테고리에서도 그는 동화 속 영웅의 이미지를 하고 있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다. 우리는 명경기를 보고, '소설가도 이렇게 스토리를 쓴다면 사기 친다며 욕먹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하는데, 필자에게는 마이클 조던의 커리어가 그런 것이다. 


조던의 커리어가 영화나 드라마 등 그 어떤 픽션이라면, 아마 '스토리가 좀 과하네'라고 훈장질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와 같은 비현실성에 힘입어(?) 조던은 '농구의 신'이라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타이틀의 주인공이 된다. 고트는 모르겠지만 '농구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르브론이 가져올 가능성은 제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르브론 제임스의 커리어는 완전 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포스트 조던 시대의 스타들은 알게 모르게 조던이 닦아 놓은 그 완벽한 길을 따라가길 강요당해왔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다들 실패했고. 애초에 성공할 수는 있는 미션이었는지도 의문이지만, 다시 보니 강요라는 표현도 옳지 않은 듯하다. 본인들이 동경해마지 않았던 길이니 그저 따라갔다고도 생각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Chosen One'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수식어를 달고, 우리 모두는 'witness'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받으며 NBA에 등장한 르브론 제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수많은 실패한 조던 후계자의 역사 속에서 갈고닦아 발굴한 그의 적자 같은 존재였다. 르브론이 실패한다면, 이제 더 이상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기대를 받았던 선수였다. 아직도 그와 유사한 수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리그에 진출한 선수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심지어 르브론도 그러한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고자 했다. 그는 조던이 만든 영웅의 역사를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까지 느꼈을 것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23번을 달았다. 나는 제2의 마이클 조던이 아니야 제1의 르브론 제임스가 될 거야, 와 같은 교과서 적인 그의 선언은 그가 23번을 달면서 공허한 외침처럼 들리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루키 시절의 르브론이 애초에 그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적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조던이 만들어 낸 로열로드는 모두의 목표이자 상징이었고,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생각은 상식이 아니었다. 어쩌면 불경하다 평가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후로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그 선수는 이미 조던이 만들어 놓은 동화 속 영웅의 길을 가지 않고 있다. 실패한 것인가 의심받았지만 2020년의 화려한 우승으로 르브론은 다시금 자신을 조던의 커리어와 비교하는 여론을 형성해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두가 그와의 '다름'에 주목한다.


조던이 닦아 놓은 영웅의 길을 10년쯤 전에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르브론은 꽤 오랜 기간, 그리고 현재에도 NBA의 주인공이다. 때로는 빌런이 주인공인 픽션이 있고 빌런인지 히어로인지 모르겠는 인물이 주인공인 경우도 있다. 르브론은 모두의 사랑을 받는 어린 영웅에서, 리그의 모두가 조롱하는 새가슴이 되었다가, 공공의 적 타노스가 되어 리그를 박살 내기도 했고, 코비 브라이언트의 유산을 잇는 레이커내이션이자 선수들 중의 선수로 인정받으며 리그에 남아 있다. 그는 이렇게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주인공 역할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입체적이고 양가적이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르브론 제임스는 지극히 리얼리티 속 인간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가진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일까, 동화 속 영웅의 길을 가지 않는 주인공의 불완전성은, 마찬가지로 대중의 완벽한 사랑 내지 존경으로 치환되기 어렵다. 나는 르브론에 대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르브론의 팬인 사람들(나 같은)은 르브론이 그와 같은, 모두가 기대하고 바라마지 않는 영웅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을, 그가 자신의 길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한편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은, 애초에 영웅의 깜냥이 되지 않았던 르브론 제임스가 스스로 그 길을 포기하고 쫄보처럼 이지고잉어가 된 것이라 여길 테다. 후자의 경우라면, 르브론을 GOAT '후보'로 올리는 것조차 납득하기 어려우리라.

 

 그렇지만 아마도 르브론 제임스의 선택, 그러니까 동화 속 영웅의 길을 가지 않겠다는 그것(아마도 디시전 쇼가 그 출발일 것)의 기저는 저 위의 두 의견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이는 아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고려되는 복합적인 것들의 총체와도 비슷할 것이다. 


필자는 동화 속 영웅인 완벽한 주인공도 좋아하지만, 동화 속 영웅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그만의 스토리로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도 좋아한다. 그래서 과거엔 조던도 좋아했고, 지금은 르브론을 좋아하는 것이다. 바라건대는, 지금 르브론이 주인공으로 쓰이는 느바의 역사가 조금만 더 길어져서, 기대보다도 더 오랫동안 그를 응원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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