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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우석 May 05. 2020

스포츠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코로나가 앗아간 우리들의 봄

'일하거나 운동하거나 스포츠를 봅니다.'


이것은 필자의 작가 소개 문구다. 작가 소개를 보다 멋있게 하고 싶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은 저렇게 본인을 소개했다. 아주 맘에 들지는 않지만 나를 한 줄로 소개하기에는 적절한 문장이고, 실제로 저건 사실이다(원래는 저기 어딘가에 추가로 술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제 애주가로서의 삶은 어느 정도 포기함).


'일하거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생에 침투했다고 처음 느낀 것은 잡혀 있던 모든 재판 기일이 연기되었을 때였다. 재판에 출석하는 것은 순수 재판 시간에 비해서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요하기 때문에 그게 일괄적으로 미뤄졌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소간 휴식 비슷한 것을 취할 수 있었고, 서면을 쓰는 시간도 다수 확보되었기에 워라밸 확보에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실제로 3월 말에는 지옥이 열렸다), 조삼모사가 조사모삼으로 바뀌면 아침형 인간은 단기간 행복해지는 그런 거다.


'운동하거나'


쾌재가 공허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립, 시립, 학교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체육관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매주의 마무리이자 시작에 해당하는 농구 모임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평일에는 홈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결국 주말에 농구를 잘하기 위한 것이다 보니 홈트를 미루는 날이 많아졌다. 4월 초에는 알 수 없는 허리 통증이 생기면서 홈트를 안 할 수 있는 정당성이 부여됐다. 고백건대, 농구 모임이 계속됐더라면 그 알 수 없는 허리 통증이란 건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수도, 생겼더라도 쉬이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통증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코로나는 나에게서 운동을 빼앗아 가기에 이르렀다.


'스포츠를 봅니다'


'스포츠를 본다'는 것은 그만큼 내 인생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일 년 내내 스포츠가 없는 시기가 없으니 그 중요한 일이 소중한 일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숨 쉬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화생방 훈련 따위를 받아봐야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하겠다.


하나 둘 리그가 문을 닫기 시작할 때까지는 우려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없었다. 나는 거의 모든 스포츠 이벤트를 보기 때문에 항상 대체재가 존재하니까. 그런데 급기야 NBA가 리그 중단을 선언하고, MLB의 개막이 미뤄지는 시점에 이르자 막연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아침에도 볼 게 없고, 낮과 저녁에는 일을 하는데 밤에도 볼 게 없어진 것이다. 어색한 느낌은 점점 공허함으로 바뀌었고 급기야는 우울감이 되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에 이르렀다. 스포츠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마주한 현실을 이겨낼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내가 브런치에 마지막 글을 언제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실제로 운동을 하던 시간, 스포츠를 보던 시간이 고스란히 인생에 남아 있으니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뭐 여타 다른 것들을 하며 채워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삶이란 그렇게 이론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낙이 없으니 의욕이 없고 의욕이 없으니 도전은커녕 기존에 하던 것들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괜히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가 생긴 것이 아닐 테다. 나에게 '스포츠'에 해당하는 것이 모두에게 한 가지 씩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는 코로나 19가 그걸 앗아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사랑했던 그때의 맘과 똑같을지를 기대하고,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걷는 '벚꽃 엔딩'을 꿈꿔야 하지만 2020년의 우리는 그 기회를 잃었다. 이 상실감은 아주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의욕의 선순환을 잃은 셈이다. 점점 제자리로 돌아오고는 있지만 잃기는 쉬워도 회복은 어려운 게 삶이다. 어쨌든 아직 NBA는 재개 여부 조차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5월 3일 오랜 공백 끝에 농구 모임을 다시 열었고(홈트도 당연히 다시 시작했다), 5월 5일 KBO가 개막하는 날 다시 브런치에 글을 쓰겠다는 의욕이 생긴 건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소 늦었지만, 코로나가 앗아간 우리들의 봄을 차근차근 찾아올 때다. 드림(Dream) 팀이 리딤(Redeem) 팀이 되어 찾아왔던 2008년의 금메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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